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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필리핀 역사•정치104

[필리핀 역사 유적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처형당한 곳(Andres Bonifacio Shrine and Eco-Park) 1896년 12월 30일,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Jose Rizal, 1861년 6월 19일 ~ 1896년 12월 30일)은 반식민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마닐라의 루네타 공원(Luneta Park)에서 처형당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호세 리잘을 기리기 위해 그가 처형당한 곳의 이름을 리잘 공원(Rizal Park)이라고 바꾸고 호세 리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하는 동상을 세웠다. 요즘 리잘파크는 마닐라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외국인들도 종종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국민 영웅,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es Bonifacio, 1863년 11월 30일 ~ 1897년 5월 10일)의 처형 장소는 대체 어디일까? 마라돈곤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쉬라인 앤 에코파크(Andres Boni.. 2019. 12. 9.
[필리핀 역사 유적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카티푸난(KKK)에게 재판을 받았던 곳(Bonifacio Trial House) 마닐라에서 카윗과 탄자 지역을 지나 마라곤돈(Municipality of Maragondon)까지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차가 무척이나 막혀서 D에게 이곳에 가보자고 제안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편이 빨랐으리라는 생각이 들만큼 차가 막혔다. 길 공사 중이라 도로를 온통 헤집어두어 차선이 반으로 줄어 있는데, 어떤 영문인지 오토바이 수십 대가 몰려다니니 차가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퓨어골드 쇼핑몰 앞에 이르러서는 흡사 커다란 주차장 안에 앉아 있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그럭저럭 '무세오 낭 빠글라티스 니 안드레스 보니파시오(Museo ng Paglilitis ni Andres Bonifacio)'에 도착했을 때는 와보고 싶었던 곳에 왔음이 기쁜 것인지 아니면 차에서 내린다는 것이 기쁜.. 2019. 12. 9.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1898년에 제작된 필리핀 최초의 국기(PHILIPPINE FLAG)가 상징했던 것 필리핀이 스페인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켰을 때는 국기라는 것이 없었다. 카티푸난을 비롯하여 각 혁명 단체는 자신의 깃발을 가지고 사용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정된 깃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és Bonifacio)가 만든 민족주의 무장 투쟁 독립운동 단체인 카티푸난(Katipunan. KKK)은 직사각형에 "K.K.K"가 적힌 깃발을 만들었지만, 1896년 '푸가드 라윈의 통곡(Cry of Pugad Lawin)' 혁명운동을 할 때만 해도 특별히 깃발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1898년부터였다. 필리핀 국기(national flag)는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가 홍콩에 망명했을 때 도안했다.. 2019. 10. 11.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독립선언과 미국의 배신 *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野史)에 근거한 부분도 많습니다. 150여년 전 어느 날의 날씨에 대한 기록을 보기란 쉽지 않지만, 1869년 3월 23일의 카비테의 날씨만큼은 예외이다. 이날 마을에는 조용한 더위가 감싸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트리니다드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 오롯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며칠째 진통이 계속되었지만, 아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산파가 와서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것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지만, 트리니다드의 남편은 아이가 건강하게 나오기를 바라며 준비해두었던 폭죽을 터트리기로 했다. 팡팡,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고, 트리니다드는 이 폭죽 소리를 들으며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 2019. 10. 10.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톤도 출신의 위대한 평민,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와 카티푸난(KKK) *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野史)에 근거한 부분도 많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참 먼 옛날, 1863년의 일이다. 1863년은 조선에서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으려 하던 해였다. 통상 수교를 거부했던 흥선대원군은 나라 밖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지만, 그해 런던에서는 세계 최초로 지하철이 개통되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표현주의 화가 뭉크가 태어났다. 키가 193cm나 되었다던 미국의 16번째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을 했던 것도 바로 1863년이었다. 그리고 1863년 11월 30일에는 마닐라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톤도에서는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의 부모조차 깨닫지.. 2019. 10. 9.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리잘은 정말 미국에서 만든 영웅일까? *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野史)에 근거한 부분도 많습니다.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하다는 자리가 왕의 자리이다. 그런 왕의 자리에서 일만 아는 일벌레로 살면 장수하기 힘들 것 같지만,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하였다는 합스부르크가 왕가 출신의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고희의 나이까지 살았다. 당시 평균 수명으로 보았을 때는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 펠리페 2세는 조선에서 연산군의 뒤를 이어 중종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시기(1527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선조 31년(1598년)에 죽었는데 왕위를 물려주기 전까지 거의 궁정에 틀어박힌 채 서류 정리에 집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 최강국 스페인이 해가 지는 국가가 되어 버린 원인 중 하.. 2019. 10. 9.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⑧ 카비테 상글리 공항(Sangley Airport)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갈 수 있을까? 요즘 필리핀 교통부(DOTr)에서는 연일 카비테 상글리 공항 공사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을 전하느냐고 매우 분주한 모습이다. 11월 말까지 공사 마감 예정이기는 하지만, 필리핀 정부에서 이렇게까지 공사를 서두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사 진행 속도가 빠르다. 그런데 대체 이 공항은 어디에 있을까? 12월부터는 마닐라공항 대신 카비테 상글리공항으로 가도 되는 것일까? 서남쪽 해안에 있는 카비테의 산 안토니오(San Antonio)지역에 위치한 상글리 공항(Sangley Airport)은 원래 미군 기지가 있던 장소라서 일반인에게 친숙한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몰 오브 아시아 쇼핑몰에서부터 3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 공항 예정지로 나온 그 어떤 곳보.. 2019. 6. 25.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⑦ 산미구엘의 불라칸 신공항(Bulacan International Airport) 건설 계획 필리핀에서는 대규모 인프라 개발사업을 할 때 '민간제안사업(Unsolicited Proposal)' 제도를 통해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을 제안한 민간 사업자는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특정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사업 제안서를 냈다고 모두 통과되지는 않는다. 정부에서 타당성 검토를 한 뒤 사업 승인 절차를 걸쳐 최종 사업자를 선정한다. 민관합작투자사업(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형태로 제안된 사업 중에서 최근 세간에 큰 관심을 불러온 사업은 바로 마닐라 신공항 사업(Nmia. New Manila International Airport)이다. 산미구엘(SMC. San Miguel Corporation)에서 향후 50년간 신공항의 독점 운영권을 갖는 조건으로 마닐.. 2019. 6. 22.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⑥ 마르코스가 피신했다는 곳, 클락국제공항의 역사와 신규 확장사업 축구장 28만 개 규모의 땅을 99년 동안 무상 임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즘이야 어느 누가 땅을 임대료 없이 사용하도록 허락할까 싶지만, 1947년 필리핀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 승인을 얻은 필리핀은 1947년 3월에 미군과 매우 중요한 협정을 체결하는데, 20만 헥타르 규모의 군사기지를 99년 동안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의 협정이었다. "필리핀과 미합중국 사이 군사기지에 관한 협정(Agreement between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concerning Military Bases)"이라는 이름의 이 협정을 보면 무려 6페이지에 걸쳐 클락의 공군기지와 수.. 2019. 6. 21.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⑤ 공항 이용객 수 증가와 필리핀 교통부(DOTr)의 대안 마닐라공항(NAIA. 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의 이용객 수는 매년 엄청난 증가세를 보여왔다. 작년 마닐라공항의 이용객 수를 보만 보아도 무려 4천 5백만 명에 이른다. 2017년과 비교하여 무려 7% 가까이 증가한 수치이다. 캐나다 인구가 37,488,800명이라고 하니 캐나다 사람들이 모두 해외여행을 간다고 해도 마닐라공항의 이용객 수(45,082,544명)를 채우기 어렵다. 굳이 통계 자료를 뒤적여 보지 않아도 마닐라공항의 이용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은 실제 공항을 이용해보면 바로 체감하게 된다. 마닐라국제공항공사나 필리핀 관광부, 항공사 등에서는 반가운 소리이겠지만, 공항을 이용해야 하는 여행객 처지에서 보면 공항 이용객 수 증가 소식이 반가울 리가 없다. 여.. 2019. 6. 21.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④ 1981년의 시작과 1988년의 변화 # 1950년~1980년 1954년 1월 1일은 그 시작부터 화려했다. 미국 NBC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정규방송으로 컬러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흑백의 화면에 컬러가 입혀지듯 많은 것들이 새로 시작되었는데, 마닐라공항(Manila International Airport)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마닐라공항은 새로 항공 관제탑을 만들었고, 새로 활주로도 건설했다. 필리핀의 국책항공사인 필리핀항공에서는 이미 1946년에 마닐라와 샌 프란시스코 사이 국제선 노선의 정규 운항을 시작하고 멀리 로마와 마드리드까지 노선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국제선 노선이 늘어났으니 국제선 전용 활주로가 필요해진 것이다. 비행기를 탄다는 일 자체가 대단한 경험으로 여겨지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항공 수요는 꾸준히 있었으니 국제선 전용.. 2019. 6. 19.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③ 우리가 가진 적이 없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 니노이 아키노 1932년은 이탈리아에서 제1회 베니스 영화제가 개막한 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9,000km 넘게 떨어져 있는 한반도는 한가롭게 영화제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 외치며 도시락 폭탄을 던져 총살형을 당하고 있었으니, 잔인한 시절이었다. 그해 11월 27일의 일이다. 앙헬레스 위쪽에 있는 딸락(Tarlac)의 컨셉션(Concepcion)에서 아이가 하나 태어났다. 부유한 정치가 가문으로 유명했던 아키노 가문의 귀한 아들이었다. 에밀리오 아기날도 대통령의 혁명군 장군이었던 할아버지와 KALIBAPI 정당의 사무총장이었던 아버지(베니그노 아퀴노 시니어) 아래에서 아이의 유년 시절은 즐겁게 지나갔다. 하지만 아이의 삶은 순탄하지 않.. 2019. 6. 19.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② 마카티 시내에 공항이 있었다고? ▲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지역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전 세계가 흔들렸던 1930년대의 일이다. 많은 외국인이 낯선 땅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뉴질랜드 태생의 영국인으로서 알려진 닐슨(Laurie Reuben Nielson)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1930년대 초반에 그는 아내를 데리고 마닐라에 왔는데, 엄청난 비행기 애호가였다고 한다. 닐슨은 필리핀을 세계와 연결하기 위해서는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필리핀에 항공학교를 세우고자 했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자의 참여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닐슨이 마닐라에 공항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가에 대한 기록은 상세히 남아있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1876에 아얄라 가문(Zobel de Ayala)에서 설립했던 '아.. 2019. 6. 18.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① 칼로오칸 공항과 필리핀항공(PAL)의 첫 노선 운항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는 바쁘지 않았던 해가 있었겠느냐만 1935년, 그해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80만이라는 우리의 농민이 일본 척무성(拓務省)의 결정에 따라 만주로 보내지는 등 식민지의 고통은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가 민족 말살을 위한 통치를 하던 그 억센 시련의 시기에도 손기정이 경성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14초로 비공인 세계신기록 수립했고, 소설가 심훈이 민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브나로드(v narod) 운동을 실천하던 농촌 운동가들의 삶을 '상록수'라는 제목의 소설로 그려 그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 당시 필리핀에서는 마누엘 루이스 케손(Manuel Luis Quezon y Molina)이 필리핀 자치령 연방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19.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