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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필리핀 역사•정치

[필리핀 가톨릭 역사] 마닐라의 비논도 성당과 필리핀 최초의 성인 로렌조 루이스

by 필인러브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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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za Lorenzo Ruiz

 

"그럼 이번에는 비논도 성당에 가보실까요?"
여행가이드와 함께 마닐라의 차이나타운에 가면 가이드가 꼭 데리고 가는 장소가 있다. 필리핀관광부에서도 마닐라 여행 중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로 손꼽는 명소인데 바로 비논도 성당이다. 이 성당의 정식 이름은 '마이너 바실리카 앤 내셔널 쉬라인 오브 산 로렌조 루이스(Minor Basilica and National Shrine of San Lorenzo Ruiz)'이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서 보통 비논도 성당이라고 불린다. 이름 그대로 비논도 지역에 있는데, 차이나타운 투어를 하고 싶다면 이 성당을 중심으로 움직이면 된다. 그러니까 성당 왼쪽으로 가면 럭키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 쇼핑 지역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옹핀 거리를 중심으로 한 맛집투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필리핀 역사에 흥미가 있다면 에스콜타 거리로 가거나 파식강 방향으로 걸어가서 산니콜라스 지역 투어를 하면 된다. 

마닐라 비논도 성당(Binondo Church)은 1596년 설립된 가톨릭교회로 수백 년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이 파괴되고 다시 지어졌다. 전쟁 중 폭격으로 종탑 일부만을 제외하고 건물이 모두 파괴되자, 지붕도 없이 미사를 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현재의 우리는 2차 대전 이후 재건된 교회 건물을 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그래도 내게 이 성당이 특별한 것은 '필리핀 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그레고리아 데 헤수스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따로 긴 목록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수없이 나열할 수 있는 한국과 다르게 필리핀에는 독립운동가로 거론되는 인물이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매우 돋보이는 인물이다. 마닐라 톤도 출신인 보니파시오가 필리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은 외국인인 내가 봐도 퍽 흥미롭다.

각설하고, 필리핀 사람 대부분은 역사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비논도 성당이 유명한 이유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의 결혼식이 있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마이너 바실리카 앤 내셔널 쉬라인 오브 산 로렌조 루이스(소성전과 로렌조 루이스 성지)'라는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필리핀 최초의 성인이라는 로렌조 루이스(Saint Lorenzo of Manila) 때문이다. 역사에 따르면 로렌조 루이스가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김대건 신부보다 200년도 전인 1594년에 태어나긴 했지만, 최초의 순교자(protomartyr)였다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가톨릭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년~1846년)와 비견되는 인물이다. 로렌조 루이스는 사제가 아닌 평신도 신분이었지만, 신앙심을 어찌 신분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마닐라의 비논도(Binondo)에서 태어난 중국계 필리핀인 로렌조 루이스(Lorenzo Ruiz)가 어떤 이유로 가톨릭이란 종교를 믿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사제의 일을 돕는 복사(Altar server)로 일했다고 하니 부모님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당시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카톨릭을 믿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비논도 성당을 다니며 도미니크회 수사들에게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1594년생이라는 것이다. 필리핀에 가톨릭이 전파된 것이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 필리핀에 방문하면서부터이고, 스페인 식민지 시대가 1571년부터 1898년까지임을 떠올려보면 필리핀이 스페인에 막 식민지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초창기였던 셈이다. 필리핀 가톨릭 역사를 보면 도미니크회 사제들이 1587년에 필리핀에서 선교를 시작하며 필리핀 곳곳에 수십 개의 가톨릭교회를 세웠다고 하는데, 비논도 성당도 그중 하나였다. 

1636년 6월, 비논도 성당에서 서기 겸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로렌조 루이스는 스페인 사람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스페인 선교사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었고, 일본 나카사키로 끌려가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강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좋지 않지만, 당시 일본의 지배계층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간에이 시기, 종교를 내세운 스페인의 침략을 두려워한 일본에서는 낯선 외국인이 가져온 종교를 심하게 박해했고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필리핀에서 왔다는 로렌조 루이스가 고문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땅속 깊이 판 구멍에 거꾸로 매달리는 참혹한 고문 끝에 로렌조 루이스는 순교했다. 그리고 필리핀 최초의 성인이 되었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로렌조 루이스는 죽어가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며 하나님을 위한 죽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만약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Ego Catholicus sum et animo Prompto paratoque pro Deo mortem obibo.
Si mille vitas haberem, cunctas ei Offerrem.


Saint Lorenzo Ruiz de Manila, Santa Ana Church, Taguig City
필리핀 마닐라 타귁시티, 산타아나 성당(Santa Ana Church) 안에 있는 Saint Lorenzo Ruiz de Manila
비논도 성당
Binondo Church - Minor Basilica and National Shrine of San Lorenzo Ruiz
Plaza Lorenzo Ruiz in Binondo, Manila
Plaza Lorenzo Ruiz
Plaza Lorenzo Ruiz
Plaza Lorenzo Ruiz
산 로렌조 루이스 모누멘트(San Lorenzo Ruiz Monument)


[필리핀 가톨릭 역사] 마닐라의 비논도 성당과 필리핀 최초의 성인 로렌조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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