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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필리핀 역사•정치

[필리핀 역사] 마닐라에서 산토 니뇨를 외치다 - 톤도 락바야 페스티벌(Lakbayaw Festival)

by 필인러브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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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에 호텔을 얻어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움직였건만 기대하던 행렬은 보이지 않았다. 톤도 성당 주변으로는 신부님의 목소리만 가득했다. 저렇게 쉴 새 없이 이야기하다니, 신부님 목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미사는 지루하게 끝날 줄을 몰랐다. 기다림에 지쳐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가서 락바야 페스티벌(Lakbay aw Festival) 행렬이 언제 시작되느냐고 물었더니 행렬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되어서 이미 떠났고, 지금은 톤도 어딘가를 돌고 있을 것이란다. 그러면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면 성당으로 되돌아올 터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알려준다. 30분 뒤, 기다림에 지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알록달록하고 어여쁜 축제 행렬이었다. 산토니뇨(아기 예수상) 성물이 어찌나 많은지, 대체 몇 개나 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렇게나 많은 성물이 한꺼번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인다. 행렬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은 걷고 있었지만, 자전거와 오토바이, 트라이시클, 자가용 등등 온갖 교통수단이 한꺼번에 동원되고 있었다. 그런데 오토바이이든 트라이시클이든 어느 것이든 화려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정성껏 장식한 기색이 역력하다. 새벽부터 장시간 걸어서 허기가 진 것인지 도시락을 손에 들고 먹으면서 행렬하는 남자를 보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기 예수상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내를 알 수야 없겠지만, 엄청난 부와 명예는 아닐 것이다. 그저 가족들 건강하고, 삼시 세끼 맛있는 것을 먹고, 전기세며 수도세 낼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는 정도를 빌었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었다.  


필리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가톨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화하면서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억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국민 대부분이 믿는다는 종교가 가톨릭이다. 예전보다 신자가 많이 줄었고, 실제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지만, 가톨릭 행사를 할 때마다 몰려드는 인원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쑥 들어간다. 그런데 필리핀 가톨릭 신자들에게서만 볼 수 있다는 좀 독특한 것이 있다. 바로 산토니뇨(Sto. Niño)라고 불리는 아기 예수상에 대한 필리핀 사람들의 사랑이다. 사람들은 산토니뇨에게 기적의 힘이 있다고 믿고, 작은 성물을 앞에 놓고 그들의 소박한 소망을 빈다. 산토니뇨가 그들의 삶에 기적이 올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산토니뇨를 수호신으로서 여기면서 경배하는 모습을 놓고 필리핀 가톨릭은 토속신앙과 결합하여 변질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지만, 타인의 냉소적인 지적이 내 종교 생활과 무슨 상관이겠는가. 필리핀 사람들의 산토니뇨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지 않는다. 퀴아포 성당에 블랙 나라렌(검은 예수상)이 있듯이 톤도 성당에는 산토니뇨가 있는 셈이다. 


매년 1월이면 관련 축제도 열리는데, 세부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가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세부에서만 축제가 열린다고 하면 오산이다. 세부 시눌룩 축제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마닐라에서도 산토 니뇨 축제가 열린다. 락바야 페스티벌 (Lakbayaw Festival)이란 이름의 이 축제는 매월 1월 셋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데 톤도 성당 주변으로 전통적인 행렬(procession)을 갖는 것이 이 축제의 중심이라서 산토 니뇨 데 톤도 프로세션(Sto. Niño de Tondo procession)라고도 불린다. 공식적인 참여 인원에 대한 정식 기록은 없지만 몇 년 전 필리핀 경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약 2만 명이 당시 행렬에 참여했다고 한다.  행사는 톤도 성당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새벽 4시 즈음에 시작되는 행렬을 중심으로 온종일 계속된다. 그중에서도 새벽 행렬은 톤도의 주요 거리를 통과하여 리잘파크 주변까지 갔다가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냥 거리를 행진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의상을 입힌 산토니뇨 성물을 앞세우고 밴드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기 때문에 제법 볼거리가 된다. 락바야(LAKBAYAW)가 "LAKBAY(여행)"와 "SAYAW(춤)"라는 두 가지 단어를 더해서 만든 단어라고 하니, 축제 이름에 꼭 맞게끔 축제가 진행되는 셈이다. "비바 산토니뇨(Viva El Sto. Niño)"를 외치면서 매년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지만, 그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소망을 이루었는지는 참 의문이다. 하긴, 당장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모두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기도하는 과정 자체가 마음의 위안이 된다. 생활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지만, 그래도 올해도 산토니뇨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지 모르겠다.



산토 니뇨 성물은 축제 참가에 있어 필수품이다. 


그런데 필리핀 사람들은 어쩌다가 산토니뇨 아기 예수상에게 기적의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산토니뇨의 기원은 무려 마젤란 시대로 올라간다. 역사에 따르면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이 필리핀에 도착한 것은 1521년 4월 7일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에서는 중종(1488~ 1544년)이 신진사림의 핵심 인물들을 몰아내어 기묘사화를 일으켰던 그해, 스페인 국왕 카를 5세의 후원으로 5척의 배와 270명으로 된 선단을 이끌고 스페인에서 출발한 마젤란은 대서양을 횡단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젤란의 항해는 쉽지 않았다. 거친 바다 위에서 극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1519년 8월 10일에 에스파냐의 산루칼 항을 출발한 마젤란은 600여 일이 지난 뒤에야 필리핀에 도착했는데, 침략과 동시에 선교하던 당시 스페인의 방식에 따라 열심히 원주민에게 신앙을 전파하며 개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세부섬 토착 왕국의 지도자였던 라자 후마본(Rajah Humabon)과 손을 잡고, 후마본의 정적이었던 막탄섬 지도자 라푸라푸(Lapu-Lapu)를 죽이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필리핀에서의 지지 세력을 다져나갔다. 덕분에 라자 후마본은 필리핀에서 최초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며, 신하 800명까지 세례를 받게 되었다. 마젤란은 라자 후마본의 아내인 하라 아미한(Hara Amihan, 후에 후아나)에게 산토 니뇨 성상을 선물하기도 하고 제법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원주민인 라푸라푸를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투에 임하다가 막탄 전투에 전사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마젤란의 부하들이 남은 배 한 척을 이끌고 스페인으로 돌아가 세계 일주를 완성하고, 이 사건에 대해 국왕에게 보고했지만 스페인 국왕이 먼 동양의 나라까지 다시 원정을 보낼지 결정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 후아나 여왕에게 아기 예수상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젤란이 죽고 스페인 원정대가 필리핀에서 철수한 동안 필리핀 최초의 가톨릭 신자들은 아기 예수상을 그들의 신앙의 중심으로 모셨다. ('Rajah'는 통치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마젤란이 죽고 40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1565년, 레가스피(Miguel López de Legazpi)가 필리핀 원정에 나섰다. 마젤란과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던 레가스피는세부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을 포격했다. 그런데 불에 타서 무너진 오두막에서 기적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산토니뇨(아기 예수상)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날 원주민들은 불탄 오두막 속에서도 남아있던 아기 예수상을 위해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이것이 세부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의 기원이다. 시눌룩 축제가 생겨나기 전에도 세부 지역의 원주민은 북소리에 맞춰 영적 존재를 기리는 춤을 추었다고는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지금처럼 비바 산토니뇨(Viva El Sto. Niño)를 격렬하게 외치게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필리핀 사람들은 산토니뇨를 기적과 신앙의 상징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 이야기는 모두 아는 바대로이다. 스페인은 향신료가 발견되지 않은 필리핀을 교역 중계지로써 삼고자 했고, 레가스피는 필리핀의 초대 총독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필리핀은 이때부터 1898년까지 긴 시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야 했다. 




[필리핀 마닐라] 톤도 락바야 페스티벌(Lakbayaw Festival)

- 날짜 : 매년 1월 셋째 주 일요일 



- 주소2460 Bato St, Tondo, Manila, 1013 Metro Manila

- 장소 : 마닐라 톤도 성당(Archdiocesan Shrine of Sto. Niño de Tondo)




마닐라 톤도 성당(Archdiocesan Shrine of Sto. Niño de Tondo)







▲ 성당 주변에서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 이 시끄러운 와중에 단잠을 주무시는 노숙자도 보인다.  






▲ 큰 행사라서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나온다. 





▲ 어느새 해가 떴다. 




▲ 행사 퍼레이드  






▲ 이런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 대체 몇 시부터 이렇게 걷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아저씨에게 페디캅이 너무 예쁘다고 했더니, 자신도 알고 있다고 답해주셨다.  









▲ 이렇게 꾸미기 위해 돈이 얼마나 들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 걸으면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 비바 산토 니뇨! 








▲ 산토 니뇨 페스티벌은 블랙 나자렌만큼 수건이 중요한 행사는 아니지만, 왕송천 씨 주고 싶어서 50페소를 주고 수건을 두 장 샀다. (블랙 나자렌 축제 때는 꼭 수건을 사서 검은 예수상을 닦아 보관한다.) 




▲ 예전에 시장에서 이걸 만들어 파는 일을 도운 적이 있었는데, 대단히 힘든 작업이다. 밤새 만들어서 새벽에 들고 나와야 한다. 





[필리핀 역사] 마닐라에서 산토 니뇨를 외치다 - 톤도 락바야 페스티벌(Lakbayaw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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