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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필리핀 월급•노동법

[마닐라 생활] 필리핀 세차장 직원은 자동차를 세차하면 얼마를 받을까?

by 필인러브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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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어디 묘지까지 가서 일해?"
"아냐, 우리는 여기 세차장에서만 일하지 묘지에서는 일하지 않아"

세차장 한쪽 구석에 붙어 있던 근무시간표를 아무리 보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비소까지 겸한 규모가 제법 큰 주차장이라서 직원이 많다는 것도 알겠고, 가게를 24시간 운영한다는 말이 참말인 것도 알겠는데 근무표에 적힌 그레이브 야드(grave yard)라는 단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혹 내가 알고 있는 묘지라는 뜻 외에 다른 뜻이 있는지 핸드폰을 꺼내 구글 사전을 검색해 봤지만 특별히 다른 뜻은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는 답을 알아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서 잠깐 쉬고 있던 직원에게 가서 그레이브 야드에 일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내 질문을 언뜻 이해하지 못한 직원을 데리고 근무시간표 앞에 서서 다시 핸드폰을 꺼낸 뒤 사전으로 영문-필리핀어 검색을 해서 그레이브 야드가 타갈로그어로 'libingan'라고 검색된다는 것까지 알아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 둘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직원이 세 명이나 왔지만 다들 당황한 얼굴로 웃기만 한다. 뭔가 그게 아니라고 알려주고는 싶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처한 모양이다. 어색한 침묵이 한참 흐르고서야 간신히 누군가의 입에서 "그러니까, 음, 그건 밤에 메인이 아닌 보조자로 근무한다는 뜻이에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세차장에 손님이 오면 한 사람에 한 대씩 순서대로 맡아서 세차 작업을 하는데, 손님이 많아 바쁘거나 누군가 쉬는 경우 보조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무표가 이해된다. 나는 재빨리 이해했다고 답해 주었다. 

멍청이 외국인이 자신들이 묘지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음에 다들 안도한 표정으로 웃더니,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세차를 계속했다. 하지만 모두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아직 손님이 오지 않아 내 옆에 계속 앉아 있게 된 직원 아이는 운이 나쁘게도 나와의 대화를 계속해야 했다. 아직 십대의 나이를 벗어나지 못한 얼굴을 한 아이였다. 험한 일을 하는 탓에 손은 거칠지만 아무리 봐도 성인 남성이라기보다는 소년에 가까워 보인다. 좋은 집에 태어났으면 남의 차를 닦아주느냐 땀을 흘리는 대신 새옷이나 사달라고 투정이나 부렸을 뭐 그런 나이이다. 

어쨌든 이 소년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들은 근무조를 3개로 나누어 일하고 있다고 했다. 3교대라고는 하지만 8시간 근무는 아니고 무려 12시간 근무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는 낮 근무자를 중심으로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오전 근무자와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하는 야간근무자가 배치된 식이다. 이렇게 업무시간표를 짜게 되면 손님이 많지 않은 야간에는 3명만 근무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무려 10명이 근무하게 된다. 그러면서 승용차 한 대를 세차하면 49페소를 받는다고 알려준다. 손님이 140페소를 내면 그중 49페소(한화 약 1,170원)만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가게 임대료며 수도세, 세제 등이 모두 가게 주인의 부담이라는 것은 알지만, 일의 고됨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몫이다. 마침 앞에서 픽업트럭이 세차 중이기에 저렇게 커다란 차를 세차해 주면 받느냐고 했더니 그건 세차비가 200페소이고, 자신은 59페소(한화 약 1,400원)를 받는단다. 그렇다면 이런 세차장에서 12시간이나 일하면 하루에 몇 대나 차를 닦는지 궁금해진다. 소년은 그 어떤 질문보다도 더 심각한 표정으로 오래 생각하더니 평균 10대 정도는 하는 듯하다고 답해왔다. 그럼 일당이 대충 500페소(한화 약 11,900원) 되느냐고 물었더니 팁도 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다른 직원이 달려와 옆에 놓인 플라스틱 통에 동전을 담으며 "알칸시아(alkancia)"라고 외쳤다. 알칸시아는 타갈로그어로 예금 계좌를 의미하니, 아마도 손님에게 팁을 받으면 따로 통에 담아 저축하는 모양이었다.  

세차를 마치고 세차장을 떠나면서 세차를 해준 직원에게 팁을 주면서 내 궁금증을 해준 소년에게도 알칸시아를 내밀었다. 뜻하지 않은 팁을 받은 소년은 벙긋 웃더니 내게 또 오라고 답을 해왔다. 모처럼 쉬는 시간에 어지간히 귀찮게 하기는 했지만, 팁을 받으니 용서가 되는 모양이었다. 

※ 배움은 끝이 없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검색을 해보고 graveyard가 묘지 외에도 '야간근무'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 graveyard shift는 보통 주야 교대제에서 자정부터 오전 4시(혹은 8시)까지의 근무를 의미한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기계식 자동 세차 시설을 보기 어렵다. 대부분 손세차이다.
마닐라의 주택가에 있는 세차장을 기준으로 세차비는 140페소 정도이다.
필리핀 세차장 직원들이 진짜 열심히 닦아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타이어 휠이다.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여 금세 더러워질 터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열심히 닦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용품점에 가면 이렇게 타이어 전용 브러시와 세정액을 팔기도 한다.
필리핀 마닐라의 세차장
자동차 정비 가격

 


[마닐라 생활] 필리핀 세차장 직원은 자동차를 세차하면 얼마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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