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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EDSA와 천재 학자 에피파니오 델 로스 산토스

by 필인러브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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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SA 도로 표지판 


EDSA는 메트로 마닐라의 중심을 반원꼴로 가로지르는 23.8km 길이의 주요 간선도로이다. 미국의 보호 아래 수립된 필리핀 자치령 연방 정부의 대통령이었던 마누엘 L. 케손(Manuel Luis Quezon y Molina) 대통령 시절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완성되었다고 한다. EDSA는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Epifanio de los Santos)라는 천재적인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처음부터 EDSA란 이름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도로는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만 해도 남북원주도로(North–South Circumferential Road)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독립한 뒤, 사람들은 이 도로에 Avenida 19 de Junio(6월 19일의 거리를 의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필리핀 국가 영웅인 호세 리잘(1861년 6월 19일~1896년 12월 30일)의 생일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1950년대, EDSA는 잠시 루트54(Route 54)라는 이름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루트54라는 이름 때문에 이 도로가 54킬로미터 길이의 도로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하이웨이 54(Highway 54)라고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9년 4월 7일에 에피나니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도로의 이름을 바꾸는 법(Repu April 7, 1959, blic Act No. 2140)이 통과되었고, 현재까지 엣사(Epifanio de los Santos Avenue)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EDSA는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까? QUEZON만큼이나 발음하기가 애매한 것이 바로 EDSA이다. 보통 '엣사' 또는 '엣사'라고 읽지만, 그 중간 즈음의 발음을 하는 사람도 많아서 어느 쪽이 더 옳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에드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Epifanio de los Santos)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1871년 4월 7일 ~ 1928년 4월 18일)는 실로 천재적인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1871년에 말라본에서 태어난 에피파니오 데 로스 산토스는 아테네오 대학에서 예술 학사 학위를 받고, 산토 토마스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는데, 1898년 사법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공부만 잘했던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역사, 문학 등에 있어 모두 탁월한 능력을 보였는데 특히 외국어에 매우 뛰어났다.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까지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천재였다고 할까. 필리핀 내 한참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그 격동의 시기, 에피파니오는 학자, 역사가, 작가, 번역가, 언론인, 주지사, 건축가, 국립도서관 관장, 시인, 음악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고, 유럽과 아시아 등지를 돌면서 필리핀에 대한 다양한 문헌을 수집했다. 그리고 필리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로서 그 이름을 남겼다. 

 

EDSA People Power Monument

EDSA 혁명

필리핀 사람들에게 EDSA 도로의 의미가 각별한 것은 자유를 목 놓아 외치며 민중의 힘을 보여주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현대사에 있어 EDSA도로는 피플 파워(시민혁명)의 상징물이었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몰아내기 위한 시위도, 부패혐의에 연루된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도 모두 EDSA 도로 위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1986년 피플 파워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을 EDSA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3년의 일이다. 마르코스 정권에 반대하여 미국으로 추방되었던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Benigno Ninoy Aquino, Jr.)가 조국인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날,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되었다. 그리고 아키노의 죽음은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러다가
1986년 2월 7일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행위들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1986년 2월 22일, EDSA 도로 위를 가득 차지한 것은 자동차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시민들은 거리 위로 나와 인간 바리게이트를 치고 마르코스(Ferdinand Marcos)의 독재와 부정 선거에 항의했고, 니노이 아키노를 추모하고 코라손 아키노를 지지하는 의미의 노란색 리본을 흔들었다. 1986년 2월 25일, EDSA 거리가 노란색으로 물들던 그 날, 마르코스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클락공항을 통해 서둘러 하와이로 망명했다. 21년이나 계속되었던 지독한 독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2월 25일은 EDSA 혁명 기념일(EDSA People Power Revolution Anniversary)로 필리핀의 공휴일이다. 
필리핀 마닐라 
SM City North EDSA
SM City North EDSA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EDSA와 천재 학자 에피파니오 델 로스 산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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