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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종교] 스페인 식민지 역사 속에서 생겨난 필리핀 가톨릭의 특징

by 필인러브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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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eruega Church in Batangas

 

아시아 유일의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가톨릭이란 종교가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이다. 삶의 많은 부분이 가톨릭의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집은 물론이고 지프니며 택시 안까지 어디를 가더라도 십자가와 성모상과 같은 성물을 볼 수 있으며, 종교적인 느낌이 가득한 이름을 쓰는 사람도 많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만성절, 성모마리아축일 등 상당히 많은 공휴일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으며, 축제 상당수도 종교 관련한 축제이다. 톤도 락바야 페스티벌(Lakbayaw Festival)에서부터 블랙 나자렌 축제(Feast of the Black Nazarene), 아띠아띠한 축제(Ati-Atihan Festival)세부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 등이 모두 종교와 관련된 축제이다. 'house blessing ceremony'라고 하여 집을 사거나 가게를 새로 개업하는 날이면 사제가 방문하여 축복해주는 의식을 갖기도 한다.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조선 사회가 유교 질서를 바탕으로 했다면, 필리핀은 가톨릭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필리핀 가톨릭교회는 정통 가톨릭교회와는 다소 다르다. 16세기 초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면서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이 필리핀의 고유문화와 어우러지며 필리핀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필리핀의 가톨릭을 놓고 "전통적 토속신앙과 결합하여 변질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라거나 "토테미즘과 융합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식의 설명을 종종 보게 되는데 토착 종교와 결부되어 기독교 전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마카티 아얄라 박물관(Ayala Museum)에 전시된 The First Mass라는 제목의 디오라마.  필리핀 정복 후 스페인에서는 필리핀에 많은 수도자를 파견하여 선교에 나섰다.  

 

필리핀에서 기독교 종교의 시작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원정대가 필리핀에 도착한 15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크고 작은 부족들을 통합하기 위해 군인과 함께 선교사를 보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Augustinians)와 예수회 수도회(Jesuits), 도미니코 수도회(Dominican friars), 프란치스코회(Franciscans) 등에서 필리핀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여 선교활동을 벌였는데, 대체로 순탄하게 가톨릭을 알리고 복음을 토착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반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필리핀이 '스페인의 통치를 평화롭게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이 이야기는 지배층의 시각에서 본 주장일 뿐이다. 소규모였다고는 하지만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많은 폭동과 반란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무력을 앞세운 종교는 지배계층의 지원 아래 신속하게 전파되었다. 더운 날씨와 언어적 장벽 등 때문에 복음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는 해도 한국처럼 심한 종교적 박해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 백 명이 넘는 순교 성인이 있는 한국과 다르게 필리핀에는 특별히 떠오르는 순교자나 성인이 없다. 

필리핀을 정복한 스페인은 100년이 채 되지 않아 상당수의 필리핀인을 가톨릭(Roman Catholic)으로 개종시키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가톨릭 사제의 수는 소수에 불과했으나 선교사들의 수에 비해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가톨릭은 퍼져나갔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 선교사의 기독교 사역 방식이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스페인 성직자들은 현지어를 배워서 스페인어가 아닌 현지어로 복음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토착 지배층의 자녀들을 개종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중앙 집중식 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지배층을 공략하면 많은 수의 필리핀인을 더 쉽게 개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관리 방식에 반발한 필리핀인들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토속신앙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필리핀의 실정에 맞게 선교 활동을 벌였다. 미신에 가까운 행위나 자연을 신처럼 숭배하는 행동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톨릭 교리에 완전히 어긋나는 풍습만 아니라면 일정 부분에서는 토착 문화를 받아들이며 회유하도록 했다. 그리고 세례가 치유의 의식(healing rituals)임을 강조하며 한 번에 많은 수의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것으로 빠르게 신도의 수를 늘려갔다. 필리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의 이야기를 연극처럼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오늘날 필리핀 교회의 행사가 강한 연극적 요소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필리핀 축제 특유의 떠들썩함까지 더해져 교회 행사가 상당히 열광적인 편이다. 요즘도 매년 부활절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재현하는 의식을 하는데 예수의 고난을 겪을 재현자(Reenacter)를 선발하여 실제 십자가에 묶고 손과 발에 한 뼘 길이의 못까지 박는다. 


나와 같은 비종교인 입장에서 봤을 때 필리핀 사람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독특한 점은 성지나 십자가, 묵주와 같은 종교적 유물에 대한 숭배이다. 마닐라 톤도 성당에 가면 성당 입구에 있는 성모상이나 산토니뇨 아기 예수상에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은총을 받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정화수를 떠 놓고 천지신명께 소원을 비는 아낙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산토니뇨(Sto. Niño)와 블랙 나자렌(Black Nazarene) 등 종교적 유물을 놓고 예수님이 현존하였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증명 도구로 여기기보다는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퀴아포 성당(Quiapo Church)에서 기도를 올리면 반드시 바라는 것 하나는 이루어진다거나 블랙 나자렌(검은 예수상)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매년 1월에 열리는 블랙 나자렌 축제(Feast of the Black Nazarene) 때면 예수상을 한 번이라도 만져보기 위해 퀴아포 성당 주변에서 며칠씩 밤샘을 하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신비한 힘을 가진 예수상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에 있고자 지저분한 거리에서 며칠씩 노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소원을 이루기도 전에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가 지나도 그런 사람의 수는 줄어들지 않으니 기적이란 것이 전혀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필리핀 종교별 인구 현황 

- 출처 : 필리핀 통계청(PSA), 2020 Census of Population and Housing

 

  Religious Affiliation 인구 비율
1 가톨릭(Roman Catholic) 85,645,362명 78.81%
2 이슬람교(Islam) 6,981,710명 6.42%
3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Iglesia ni Cristo) 2,806,524명 2.58%
4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eventh Day Adventist) 862,725명 0.79%
5 아글리파이(Aglipay) 818,916명 0.75%
6 IFI(Iglesia Filipina Independiente) 640,076명 0.59%
7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 540,364명 0.50%
8 UCCP(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 470,792명 0.43%
9 여호와의 증인(Jehova's Witness) 457,245명 0.42%
10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429,921명 0.40%
  기타(Other religious affiliations) 8,954,291명 8.24%
  무교 43,931명 0.04%
  무응답 15,186명 0.01%
합계 108,667,043명 100%

 

※ 가톨릭: Catholic Charismatic의 신도 74,096명 불포함 / 2015년과 달리 2020년 조사에서는 카리스마파 가톨릭(Catholic Charismatics)을 가톨릭 카테고리에서 제외함 

 

Parish of the Immaculate Heart of Mary, Antipolo, Rizal.
Black Nazarene
Black Nazarene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부활절 행사에 대한 필리핀 사람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Santa Maria Church, Ilocos Sur
Santa Maria Church, Ilocos Sur
산타마리아 성당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마닐라 마카티에서 만났던 사람들. 필리핀에 와서 어떤 종교를 전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 위의 내용은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SA(Philippines Statistics Authority) : Religious Affiliation in the Philippines 
· PSA : 2020 Census of Population and Housing  Population Counts Declared Official by the President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종교] 스페인 식민지 역사 속에서 생겨난 필리핀 가톨릭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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