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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여행하기/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뎅기열과 코로나19



반은 강제적으로 또 반은 자발적으로 자가 격리를 한 지 14일째. 메트로 마닐라에 봉쇄 조치가 내려지기 전부터 두문불출하였으니 실제적으로는 좀 더 오래되었겠지만, 언제부터 외출을 못 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계산해봤자 마음만 뒤숭숭해질 뿐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유머와 긍정성이라고 했으니, 힘든 시간이 절반은 지났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뎅기열에 걸려서 무척이나 고생한 적이 있다. 뎅기열은 모기를 매개로 하여 걸리는데, 이 병이 나면 고열과 함께 근육통이나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몸살감기 비슷한 증상을 보여서 초반에는 감기에 걸렸다는 착각을 하게 하지만, 온몸에 열이 나고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감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온몸에 통증을 심하게 느끼게 되는데, 팔다리가 퉁퉁 부으면서 피부의 감각이 사라지기도 한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어찌나 그 고통이 심했는지,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조차 큰 도전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럭저럭 병이 나았지만, 온몸이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는 듯한 그 느낌은 영원히 잊기 어려울 듯하다. 기실 뎅기열의 가장 큰 문제는 회복이 된 뒤에도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지고, 매사에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붉은 반점이 완전히 뒤에도 면역력이 약하면 걸린다는 질병이란 질병은 두루두루 모두 겪으면서 잔병치레를 꽤 해야만 했다. 모두 다 함께 식사해도 나 혼자 식중독에 걸리고 있는 형편이라, 질병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신문을 많이 읽은 적이 있었을까 싶다. 요즘 나는 최신 뉴스를 많이 보면 무언가 뾰족한 수라도 있는 것처럼 온종일 신문을 손에 놓지 못하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자리에 앉아 글을 쓰거나, 글을 읽고 있으니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내 주변으로 활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분마저 든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장 먹을 것도 있고, 인터넷도 잘되고, 전자책도 있으니 집에 머무는 일은 어려운 것은 없었지만, 마음은 객관성을 잃기 쉬운 존재이다. 이 와중에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내 물욕이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이내 숟가락을 놓는 편이라 식탐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오해였던가 보다. 코로나19로 장보기가 어려워지자 자꾸 식료품이 부족한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평소 밥 한 공기 이상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쌀도 더 사두고 싶고, 딱히 즐겨 먹지도 않던 통조림 햄도 잔뜩 사보고 싶어진다. 물건을 잔뜩 쌓아둔다고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쇼핑하는 사진을 보면 뭐라도 좀 사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니 묘한 일이다. 신문을 펼치면 세상이 혼란으로 가득한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한국처럼 온라인 쇼핑이 잘 되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터인데 싶지만, 필리핀에서 살면서 "한국에 있었더라면"이란 가정을 해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래시장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까운 동네 시장에조차 나가지 않은 지 2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장에 가려면 바랑가이 홀에서 발행한다는 통행증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내게는 그 과정이 대단한 모험처럼 느껴졌다. 필리핀 내무부(DILG) 차관이 격리 기간에도 필리핀인은 생필품을 자유롭게 구매할 권리가 있으며, 어떤 시장이나 식료품점에서도 "no mask, no quarantine pass, no entry(마스크나 통행증 없으면 입장 불가)"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지만 나는 필리핀인도 아니고, 내무부 차관보다는 바랑가이 검역소 아저씨들이 더 가까운 곳에 있다. 바랑가이 아저씨가 부르면, 내무부의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보다는 아저씨 요구사항에 순응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이다. 루손섬 지역사회 봉쇄‧격리조치 14일째, 슈퍼마켓에 잠깐 다녀오는 간단한 일을 놓고도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었다. 




▲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뎅기열과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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