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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여행하기/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뚜레쥬르 빵집의 돌덩이 바게트


한때는 삼시 세끼 빵만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 입맛이란 바뀌기 마련이다. 소맷자락 가득 흰색 밀가루를 휘날리며 베이킹을 배웠을 정도로 빵을 퍽 좋아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빵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너무 많은 빵을 사서 그런 것인지 혹은 둘 다 원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장보기에 있어 빵집 방문이 생략된 지 오래다. 타루칸 마을에 갈 때마다 동네 빵집 진열대에 놓인 빵을 죄다 사는 것은 삶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만, 많이 사기만 할 뿐 내가 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으면서 마음이 좀 바뀌었다. 마우스를 들고 끄적끄적 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소일하는지라 먹는 것 외에는 딱히 즐거울 일이 없어서인지 무언가 먹고 싶은 것이 잔뜩 늘어나 버린 것이다. 겉이 바삭하고 고소한 바게트도 그중 하나였다.


락다운 기간 중이라도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면이 워낙 커서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기 힘들 뿐이다. 순정만화 캔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보면 하늘은 눈에 띄게 깨끗해지고, 도시 소음이 상당히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로 필리핀의 배달 문화도 발전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도 배달 가방을 들고 열심히 거리를 누벼주는 사람들 덕분에 락다운 기간이라도 빵을 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신중한 모습으로 빵 가게를 뒤진 것은 내가 먹고 싶은 빵이 바게트였기 때문이다. 케이크나 판데살이면 모를까, 바게트와 같은 빵을 파는 곳은 많지 않으니 어디로 주문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abs-cbn 뉴스에서 "Where to order freshly baked bread for pickup and delivery"라는 멋진 제목으로 기사를 내주었기에 15개나 되는 빵집의 페이스북을 모두 살펴보고, 뚜레쥬르(Tous Les Jours)에서 빵을 사보기로 했다. 98페소짜리 바게트 하나만 덜렁 사기는 아쉬우니 식빵 하나와 모닝롤까지 골라놓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아침마다 하나씩 꺼내 먹기로 마음먹었다. 


푸드판다의 배달원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정말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손님과의 접촉을 피하고자 멀리 빵 봉지를 놓아두고 재빨리 가려고 한다. 결제는 이미 온라인으로 했지만 따로 팁을 좀 주고 싶어서 살짝 불렀는데, 가까이 오면서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다. 실로 미묘한 거리두기이다. 그런데 빵 봉지를 풀어보고 대단히 실망하고야 말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이건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더라도 실망할 수밖에 없는 빵이었다. 뚜레쥬르('매일매일'이라는 뜻)라는 상호가 무색하게 바게트는 돌덩이처럼 딱딱했다. 바게트가 원래 좀 단단한 종류의 빵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바게트 특유의 단단함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제빵 과정에서 단단함을 준 것이라면 빵 전체가 동일하게 단단해야 하는데, 끝부분 조금은 덜 단단했다. 대체 언제 구운 빵을 보내준 것인지 빵 안쪽까지 수분이 모두 날아가서 도무지 손으로 자를 수 없을 정도였다.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칼로 썰어봐도 부스러기가 잔뜩 날리는 것이 흡사 건빵을 자르는 기분이다. 버터라도 발라서 다시 굽지 않으면 먹을 수 없겠다 싶어 식빵을 집어 들었지만, 식빵 또한 비슷했다. 우유나 계란처럼 빵의 풍미를 살려주는 재료를 최대한 아껴서 만든 기색이 역력하니, 이래서야 슈퍼에서 파는 40페소짜리 식빵이 더 부드러울 듯하다. 이런 식빵을 168페소나 주고 산 것에 대해 혀를 끌끌 차면서, 뚜레쥬르에서 빵을 사면서 "비싸도 맛있을 것"이라는 식의 기대감을 품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앞으로 뚜레쥬르에 다시 가는 일은 없을 터이지만 말이다.  






[필리핀 마닐라 생활] 뚜레쥬르 빵집의 돌덩이 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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