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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지루한 월요일과 호두과자

by 필인러브 2020.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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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그것도 대도시 마닐라에서 생활하다 보면 호두과자 따위는 까맣게 잊고 만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으로 호두과자를 즐겨 먹는 편도 아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매우 간단하다. 일단 그 맛이 내 취향이 아니다. 두서너 개는 아주 맛있게 먹지만, 네 개 정도에 가면 몸에 단팥 성분이 충분하게 느껴지고, 그 뒤로는 싫증을 내고야 만다.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간단하다. 나로서는 대체 어디에서 호두과자를 판매하는지 잘 모르겠다. 관심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마닐라에 호두과자 전문판매점이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본 바 없다. 호피아(Hopia)처럼 판매점이 곳곳에 눈에 띄면 한 번씩 사 먹을 수도 있겠지만, 파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10년 가까이 필리핀에 생활하면서 호두과자를 딱 두 번 먹어 봤다. 일로일로에 살 때 이야기이니 한참 전의 이야기지만, 누군가 한국에서 오면서 호두과자를 선물로 사 들고 와서 아주 맛있게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었다. 두 번째 본 것은 앙헬레스에 있는 한국슈퍼에서였는데 동네 교민이 만들어서 파는 듯했다. 뜻하지 않는 곳에서 호두과자를 보는 일은 매우 기뻤지만, 상자에 "수빅의 명물 호두과자"라고 적혀 있어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호두는 가을에 수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캐쉬넛이면 모를까, 필리핀 수빅 지역에서 호두가 난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은 바 없다. 모르긴 몰라도 필리핀에 호두가 있다면 십중팔구 미국 캘리포니아나 중국, 혹은 베트남 등에서 수입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어디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해도 가격이 꽤 비싸서 1kg에 천 페소는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구하기 어렵다"라는 두 번째 이유가 호두과자를 멀리하는 좀 더 실질적인 이유가 된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때, 집에만 머물러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것 같은 날에 누군가 호두과자를 보내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없다. 호두과자를 과자 집어 먹듯 먹을 마음은 없었는데 욕심이 위장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는 탓에 과식을 하고 말았다. '두서너 개는 아주 맛있게 먹지만'이란 앞의 설명이 무색하게 상자째 들고 호두과자를 먹어 치우고는 점심은 거르기로 하고 식곤증에 이기지 못한 채 자리에 누웠다. 만족이라고는 모르는 마음이 천안에 가서 갓 구운 호두과자를 먹고, 병천순대를 파는 식당에 가서 순대 한 접시에 막걸리를 한 그릇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요일 혹은 화요일과 다를 바 없는 월요일 오전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 마닐라에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김치와 김밥, 잡채 등을 만들어 파는 것인데,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주문이 많지 않은지 고객 대상은 대부분 필리핀 사람이다. 포장 단위를 작게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식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판매 품목을 보면 대부분 김치이지만, 간혹 좀 특이한 음식을 파는 재주 많은 분도 보인다. 아마 그런 분 중 하나가 호두과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모양이다. 상자에 상호 하나 적혀 있지 않아서 대체 어느 분이 얼마의 가격으로 판매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솜씨가 좋다. 가운데 부분에 큼지막한 호두가 한 개 오롯이 들어 있고 적당히 구워 색감도 어여쁘다. 많이 파셔서 몰 오브 아시아와 같은 쇼핑몰에 매장을 내셨으면 좋겠다. 







[필리핀 마닐라 생활] 지루한 월요일과 호두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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