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20페소의 미친(mad) 페이스 쉴드로 부자가 되려면

by 필인러브 2020. 9. 8.
반응형



"이제 곧 나도 부자가 될지 몰라!"

"어떻게?"

"페이스쉴드를 중국에 주문했어. 이달 말에 물건이 들어오면 잔뜩 팔아보려고 해."


서로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준지 4년인가 5년 만에 왕완딩 씨가 판매 품목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왕완딩 씨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리베르타드역 주변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가치담배나 신문, 탄산음료 그리고 핸드폰 로드 등을 파는데 그중에서도 잘 팔리는 것은 역시 담배이다. 하지만 담배는 이문이 많지 않으니, 소박한 좌판의 판매 품목에 페이스쉴드를 더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고 하여 사람들이 담배를 덜 피우거나, 콜라를 덜 마시는 것도 아니고, 왕완딩 씨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과 똑같은 수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플라스틱 페이스쉴드(안면가리개)의 착용이 의무화된다니 가게에 놓고 판매할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20페소 정도에 물건을 받아서 50페소에 팔면 꽤 돈이 될 것 같다나. 나는 단단하게 끈으로 묶은 계란 꾸러미를 넘겨받으며 나도 부자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고 열심히 격려해주었다.


그런데 세상 사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난 뒤 내가 외출을 꺼리는 것을 깨닫고 열흘 혹은 2주마다 내게 식료품 배달을 해주고 있는 왕완딩 씨였다. 이 특별한 배달에 대한 내 보답은 따뜻한 저녁밥. 왕완딩 씨는 빈말로라도 무조건 맛있다는 칭찬을 하지 않는 편이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라는 답 정도면 굉장한 극찬에 속하는데, 가장 호평을 받았던 것은 한국식 닭죽과 불고기였다. 냉장고에서 소고기를 보니 아주 맛있게 먹을 불고기를 해볼까 싶어 왕완딩 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계란이 하나도 없음을 알렸다. 그리고 배달을 오는 김에 페이스쉴드도 몇 개 가져다주길 청했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페이스쉴드는 많이 팔았느냐고 슬쩍 물었더니 판매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답해왔다. 페이스쉴드는 일회용 마스크처럼 자주 구매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 중국으로부터의 배달을 기다리는 동안 모두 하나씩 이미 사버려서 사업성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지는 않아도 물건을 좀 가지고 있는지 내게 몇 개나 필요한지 물어왔다. 내게는 원가인 20페소에 주겠다는 이야기에 혹해서 10개를 사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알려주며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온다. 하나는 안경처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second one is mad"라나. 미친(mad) 페이스쉴드라니? 혹 상식에서 벗어나는 제품이라는 의미로 매드(mad)라는 단어를 썼나 싶기도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나는 미친 쪽을 좀 더 좋아한다고 답해주고, 대체 페이스쉴드가 왜 미친 것이란 평가를 받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왕완딩 씨 왈, 끈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로 made를 쓰려고 했던 것을 mad라고 잘못 쓴 것이라면서 안경형과 가터벨트처럼 된 끈을 조절하여 쓰는 형태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준다.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나나 배달을 받으면서 "내 미친 페이스쉴드는 어딨어?"라고 물었다. 왕완딩 씨는 눈에 띄게 당황해하면서 급하게 텍스트를 쓰냐고 오타가 난 것일 뿐 왜 페이스쉴드가 미쳤겠냐면서 장황하게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놀리면 나쁘다는 것 정도야 나도 잘 알고 있는 바이지만,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다는 것을 몰라서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편하게 잡담을 나누지 못해 잔뜩 우울했던 터에 지나치리만큼 고지식한 이 친구를 놀리는 재미를 놓칠 수 없었다. 나는 마음껏 왕완딩 씨를 놀려주는 기쁨을 누렸다.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웃음이 물결쳤다.





서두르냐고 불고기가 좀 짜게 된 것 같다는 내 말에 "고기가 짜면 밥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지!"라는 답이 들려왔다. 



▲ 칭찬을 받아보겠다는 의욕이 양념으로 들어간 닭죽. 




[필리핀 마닐라 생활] 20페소의 미친(mad) 페이스 쉴드로 부자가 되려면 

- Copyright 2020.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all rights reserved -


※ 저작권에 관한 경고 : 필인러브(PHILINLOVE)의 콘텐츠(글. 사진, 동영상 등 모든 저작물과 창작물)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입니다. 필인러브의 콘텐츠를 개인 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올리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전 동의 없이 내용을 재편집하거나, 출처 없이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실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