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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라자다 쇼핑몰에서 테이블을 샀는데 의자가 온다면

by 필인러브 2020.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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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햇살이 거리를 한가득 점령하고는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바람이 잘 부는 바닷가에 앉아 있어도 시원찮을 날에 태양이 작열하는 도로 위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간 까닭은 테이블 때문이었다. 라자다 쇼핑몰에서 접이식 테이블을 하나 주문했는데, 난데없이 의자가 배달이 온 것이다. 판매자가 물건을 잘못 보냈으면 의당 다시 택배 기사를 보내 수거를 해가야 할 터인데 싶지만, 필리핀에 그런 서비스 정신이 있을 리가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라자다에서는 구매자가 직접 LBC 사무실에 가서 택배로 환불 물건을 판매자에게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부피가 큰 데다 무겁기까지 한 의자를 가지고 LBC 사무실까지 걸어야 할 것을 생각해보면 '미안하기는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전혀 미안하게 들리지 않지만, 반품 비용을 낮추기 위해 소비자에게 직접 LBC사무실까지 방문하여 반품 처리하도록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쇼핑몰 상담원이야 무슨 힘이 있겠는가. "지금 세 명과 함께 채팅 중이라서 답변이 늦다."고 양해를 구하는데 안쓰럽기도 하다. 외출을 할 요량이면 왜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려 했겠는가 싶어서 억울한 마음마저 들지만, 라자다 고객센터와 아무리 이야기해도 매뉴얼에 따라 응대할 것이었다. 별도리가 있나, 쇼핑몰 정책이 그렇다는데 무조건 따지기 힘든 노릇이다. 그리하여, 마스크를 두 개나 겹쳐 쓰고 집을 나섰다. 


참으로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강제 칩거를 시작한 지 5개월이 넘게 지났지만, 생활비가 떨어져 은행에 한 번 다녀온 것이 내 기억 속 외출의 전부였다. 그래서일까, 거리 구석구석이 모두 빛나는 듯 보였다. 건물 사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하늘조차 맑고 상큼하고, 하찮은 나무도 아주 어여쁘다. 최대한 발걸음을 빠르게 하려고 애를 써보지만, 길거리 모퉁이의 묘목가게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자연이 만든 초록색을 본다는 것 자체가 대체 얼마 만이더란 말인가. 거리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집에 쌀을 잔뜩 사다 둔 처지에 다른 이들에게 왜 평소처럼 바깥에 있는 것이냐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 누가 이 더운 날씨에 나와 바나나를 팔고 싶을까. 그것도 마스크를 쓴 채로 말이다.


LBC 사무실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고 매우 띄엄띄엄 손님을 받고 있었다. 에어컨이 나올 것이 틀림없을 사무실 안으로 냉큼 들어가고 싶지만, 가드 아저씨가 바깥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앉아서 기다리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즐겁게 매장 안으로 들어간 내게 들려온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LBC 직원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물건의 무게가 무겁거나 상자 크기가 크면 택배를 보낼 수 없도록 제한을 두고 있는데, 내가 들고 온 의자가 제한 크기를 약간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LBC 직원은 이 정도 크기라면 사무실로 올 것이 아니라 택배 기사가 방문 수거해야 하는데 왜 라자다에서 직접 반송을 해야 한다고 안내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면서 고객센터로 다시 연락해보라고 매우 친절한 얼굴로 알려주었지만, 그 친절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LBC 규정이 그렇다는 것에 직원의 잘못은 하나도 없음을 매우 잘 알지만, 다시 의자를 들고 집으로 가려니 마음이 어두워진다.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사서 마신 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햇살이 뜨거웠다. 토요이터리 빵집에서부터 파식강에 이르는 지역 내에서만큼은 모르는 길이나 모르는 가게가 없었는데,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복사 가게가 사라지고 중국인 슈퍼가 새로 생긴 것이 좀 슬펐다. 




필리핀 마닐라 



▲ 라자다 쇼핑몰 상담원에게 안내받은 LBC 사무실로 가는 길. 바코드를 주면서 그 바코드를 보여주면 택배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 마스크를 써야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다. 




▲ 요즘 LBC Express 사무실 풍경 



▲ 이곳도 투명비닐 칸막이가 잔뜩 보인다. 



▲ 루손섬 최북단에 있는 바타네스(Batanes)로 무언가 보내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모양이다. 



[필리핀 마닐라 생활] 라자다 쇼핑몰에서 테이블을 샀는데 의자가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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