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생활155 [필리핀 마닐라] 치노이(필리핀 화교)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곳, 중국인 묘지(Manila Chinese Cemetery) "그럼 주로 어디를 다니는 거예요?"필리핀 일주를 하고 있다는 내게 R이 여행 중 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왔다. 일상이 제법 분주하기는 하지만 타인이 듣기에 그럴싸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닌 터라 묘지 주변을 어슬렁대는 것이 취미라고 답을 했는데, 내 말이 농담인 줄 아는지 깔깔 웃는다.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었던 나는 R에게 내 말이 농담이 아닌 진담이라고 재빨리 일깨워주었지만 그래도 R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예의 바르게 단정한 삶을 살아가는 R에게는 별 목적도 없이 묘지 주변을 서성이는 일이 농담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무의미한 이야기이지만, 필리핀 곳곳을 얼마나 돌아다녔느냐를 따져본다면 나는 꽤 상위권에 들 자신이 있다. 이 필리핀이란 나라는 생각보다 넓기도 하여서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 2019. 12. 8. [필리핀 마닐라 근교 여행] 마숭이 지오리저브 열대우림 생태공원(Masungi Georeserve) "이곳의 이름은 대체 어떻게 읽어요? 마숭이? 마숭기?""마숭이(Masungi)로 읽어주세요. 저 산이 뾰족뾰족한 게 보이시죠? 타갈로그어로 뾰족뾰족한 것을 마성키(Masungki)라고 해요. 이곳의 이름은 마성키에서 유래되었지요."마숭이 지오리저브 보존지구의 베이스캠프에서 트래킹 코스에 대해 안내를 해주던 직원은 딱 봐도 좋은 집 안에서 자라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여자였다. 간혹 부모님에게 매우 사랑받고 컸으리라 짐작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런 타입의 여자였다. 그림 같은 미녀는 아니지만 웃는 모습이 꽤 사랑스럽다. 그녀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등산에 대한 주의사항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야기에 도통 집중하지 못한 것은 주변 풍경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었다. 공기가 어찌나 상쾌한지 머릿속 .. 2019. 12. 5.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파티의 핵심은 "너는 왜 이름이 아자야?"아자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기초 체력이 가장 우수한 사람이었다.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새벽 5시에 일어나 호핑투어를 해도 자정이 다 될 때까지 호텔 수영장을 떠날 줄 몰라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끊임없이 잔병치레를 하면서 조금만 많이 움직여도 이틀은 쉬어야 회복되는 나로서는 아자의 그 체력이 무서울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젠가 아자와 비콜 여행을 가야지 마음먹고 있는 것은 아자의 고향이 비콜 지방(Bicol Region)이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연한 연두색에서부터 진한 초록색까지, 녹색의 색감이 가득한 비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지만 아자가 고향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중에는 직장에 다닌다.. 2019. 12. 4. [필리핀 생활] 베트남축구대표팀의 역전 드라마 (인도네시아와의 축구 경기 풍경) "베트남 어디에서 오신 거예요?""하노이에서도 좀 왔는데, 대부분 사이공(호찌민)에서 왔어요!" 흥겨운 응원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울리는 듯한 기분으로 축구 경기장을 빠져나오면서 관광버스 옆에서 경기장 쪽을 바라보며 깃발을 들고 있는 분을 보았다. 이런 모습으로 관광버스 옆에 서 있다면 여행가이드일 확률이 백에 가깝다. 나는 대체 다들 어디에서 오셨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자신은 호찌민에서 왔으며 5일 일정으로 마닐라에 머문다고 알려준다. 이렇게 해외 원정 응원을 온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그 숫자를 물어보니 가이드가 말하시기를, 자신이 데리고 온 여행객은 100여 명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단다. 아마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눈치이다. 그래도 나는 가이드 분와 헤어.. 2019. 12. 2.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스카프와 노브랜드 김말이와 버스 컨덕터 필리핀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이라면 스카프부터 떠오른다.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긴 스카프는 참으로 요긴하여서 멋을 내기 위한 용도 이상으로 쓰인다. 먼지가 많을 때는 먼지 가리개로 쓰이고, 에어컨이 차가울 때는 담요처럼 쓰이며, 햇살이 뜨거울 때 해 가리개로 쓰이니 그야말로 생활 필수 아이템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용도로 쓰이는 스카프도 사용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그 활용도가 달라진다. 주변의 필리핀 사람들은 으레 하나씩 다 가지고 있으니 나도 가지고 싶어 스카프를 하나 장만해두었지만, 내게는 딱히 유용하게 쓰이지 않았다. 마카티 그린벨트 쇼핑몰을 죄다 돌아다니면서 까다롭게 고른 것을 생각해보면 매일 써야 마땅하지만, 실상 그렇지 못했다. 남들은 생활 속에서 두루두루 잘만 쓰는데, 내게는 그저 .. 2019. 11. 30.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만성절 마닐라 사우스 묘지 풍경 필리핀 사람들을 매우 좋아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여서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종종 생긴다. 특히 장례문화에 대해서는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잔뜩이다. 고인 또는 유가족의 취향에 따라 무덤의 색을 어여쁘게 칠하고, 비교적 덤덤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꽤 마음에 들지만 화장하고 나온 뼈를 기념품으로 가지고 간다거나, 무덤 위에 올라 장난을 치고 놀거나 잠을 자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묘지 주변까지 잔뜩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더욱더 이상하게 여겨진다. 아마도 내가 무덤 주변은 그 어느 곳보다 깨끗해야 한다고 배운 한국인이라 그런 모양이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정도의 고민밖에 없는 만성절 오후였다. 요즘 나는 필리핀 역사에 관한 .. 2019. 11. 6.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마닐라 보이' 아저씨가 파는 것 어릴 적 야바위 아저씨만 보면 좋아서 뛰어가던 꼬마였던 나는 지금 이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그 버릇을 전혀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뭔가 눈길을 끄는 것을 만나면 꼭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내가 대체 어디로 가고 있었던지, 시간은 몇 시인지 그런 것은 까맣게 잊고야 만다. "너는 한국인이니? 나는 마닐라 보이(Manila Boy)야!"만성절이라고 마닐라의 사우스 묘지(Manila South Cemetery) 주변이 온통 잡상인 천지였다. 묘지에 갈 때 필요한 초와 꽃을 파는 사람보다 옷과 음식, 이런저런 액세서리를 파는 상인이 더 많으니 흡사 야시장이라도 된 모양이다. 그런 혼잡한 길 한가운데서 아저씨가 뭔가 독특한 것을 팔고 있었으니 보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마닐라 보이"라고 소개.. 2019. 11. 5. [필리핀 마닐라] 두테르테 대통령과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핼러윈 소품 1994년 여름은 대한민국에 건국 이래 최초로 전국 최고 기온 38.4도라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는 기록이 있는 해이다. 그해 제프 베조스는 미국의 워싱턴주 시애틀에 회사를 하나 차렸다. 그는 자신의 사이트에 아마존닷컴(Amazon.com)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본격적으로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다. 인터넷 관련 분야가 성장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파는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아마존닷컴은 철저한 배송 시스템과 뛰어난 고객서비스로 닷컴버블(dot-com bubble)의 붕괴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의 창업주는 약 147조8000억 원(1310억 달러)이란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제프 베조스는 포브스가 발표한 부자 순위.. 2019. 10. 31. [필리핀 생활] 마닐라에서 집 밖에 빨래를 널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요? 앞으로 마닐라에서는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넣지 말라고요?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Isko Moreno Domagoso)시장이 마닐라 시장(mayor)으로 취임한 뒤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일을 엄청나게 하더니 드디어 좀 이상해진 것 같다. 도시를 깨끗하고 질서 있게 만든다는 이유로 창문 밖이나 도로에 빨래를 거는 일을 금지하겠다고 나섰다니 하는 말이다. 빨래 말리기 딱 좋은 햇살을 자랑하는 필리핀에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오늘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미 지난 10월 18일에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 시장이 이와 관련된 조례 Ordinance No. 8572 (Tapat Ko-Linis Ko Ordinance)에 서명한 상태라고 한다. 주거 및 상업 시설을 깨끗하게 유지하겠다는 것이야 누구나 찬성이겠지만,.. 2019. 10. 25.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금요일 퇴근 시간에 LRT 지상철을 타는 일이란 슬금슬금 햇살이 그 기운을 잃어가더니, 마닐라에 저녁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이 말인즉, 차가 막히기 시작할 것이란 이야기이다. 최근 필리핀 신문에 등장한 기사에 따르면, 필리핀의 교통체증으로 잃게 되는 기회비용이 연간 35억 페소(약 807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변변한 교통 인트라 없이 1,2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답게, 마닐라 사람들이 교통체증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9년이나 된다는 것이다. 40년 동안 경제활동을 한다고 전제하여서 하는 이야기라고 하니 경제활동 기간을 좀 길게 잡은 듯하지만, 절반이라고 생각해도 필리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고작 70여 년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하루 평균 1시간씩만 시간을 허비한다고 해도 그 손해란 대체 얼마란.. 2019. 10. 25.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