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생활] 설날 도마뱀 손님

by 필인러브 2020. 1. 26.
반응형



게으른 나는 많은 일을 생각 속에서만 하고 만다. 설날 전에 한국슈퍼에 가서 떡을 사려는 것 같은 계획만 해도 그렇다. 슈퍼에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은 여러 번 하지만 도무지 실행에 옮기지를 않는다. 그리고 슈퍼까지 떡을 사러 갈만한 부지런함이 없는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은 떡국 대신 시리얼로 설날 아침을 먹으면서 시리얼을 개발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리얼을 배부르게 먹고 힘이 나서 신년맞이 방 청소를 한다고 오래간만에 전투적인 태도로 집 안 구석구석까지 걸레질을 하는데 상자 아래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후다닥 튀어나왔다. 카메라 배터리만한 키를 가진 아주 작은 녀석이었다. 손가락 발가락이 어찌나 작은지 아주 가까이 가서 봐야지만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도마뱀이 모기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도마뱀에 대한 내 감정은 싫다는 감정보다 좋아하는 감정이 더 컸다. 상황만 되면 멋진 리자드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 까닭에 도마뱀의 등장은 반가웠지만 나는 부주의한 편이라 혹 실수로 밟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녀석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집 밖으로 내보려고 했지만, 이 녀석, 나의 멋진 집이 좀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도통 움직이질 않았다. 취미가 사진 모델 활동인지 옆으로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쳐다봐도 긴장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마뱀은 발을 아주 빠르게 놀려 움직여서 움직임이 아주 귀여운 편이라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놓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기다려 보았지만, 지칠 때까지 한참이나 기다려도 녀석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눈까지 감고 있는 것이 낮잠이라도 자는 모양이었다.


녀석이 미동도 하지 않고 자는 동안 백과사전을 검색하여 "도마뱀은 주로 개구리, 거미, 물고기 등을 먹으며,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서 먹이를 잘 잡아먹는다."라는 귀한 정보를 얻었다. 저 작은 도마뱀에게 먹힐 개구리나 거미, 또는 물고기를 준비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얼마나 소리에 민감한지 옆으로 가서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모든 도마뱀이 소리를 잘 듣는 것은 아닌 모양인지 도무지 잠에서 깨질 않았다. 살다 보면 설날에 이토록 움직임이 둔한 도마뱀이 집을 방문하여 낮잠을 즐기고 가는 날도 오는 모양이로구나. 게으른 도마뱀과 게으른 거북이와 함께 하는, 참으로 한가로워서 좋은 설날이었다. 







[필리핀 생활] 설날 도마뱀 손님  

- Copyright 2020.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all rights reserved -


※ 저작권에 관한 경고 : 필인러브(PHILINLOVE)의 콘텐츠(글. 사진, 동영상 등 모든 저작물과 창작물)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입니다. 필인러브의 콘텐츠를 개인 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올리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전 동의 없이 내용을 재편집하거나, 출처 없이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실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