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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루손섬

[필리핀 사가다 여행] 구름을 아래로 보는 마을 - 운해(Sea of clouds)

by 필인러브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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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다에서 바나웨로 가는 길

 

추위가 도톰한 후드티 안을 파고들 정도로 방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샤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대한 빠르게 머리만 감고 나갈 준비를 끝냈다. 전날 밤에 짐을 미리 싸두었더니 아침 준비가 빠르다. 하지만 바로 숙소를 나가기가 머뭇거려진다. 사가다를 떠나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을 풍경을 보고 싶어 발코니로 나가보니 동네가 온통 어둠으로 쌓여있다. 이미 불을 켜놓고 하루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집도 몇 집 보였지만, 바다에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처럼 멀고 외로워 보인다. 검은 도화지를 펼쳐놓은 듯한 시간 속에서 부지런한 것은 닭밖에 없다. 닭의 울음소리가 어둠 속을 채운다.

아침이라기보다는 밤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숙소를 나선 것은 사가다(Sagada)를 떠나 바나웨(Banaue)에 가는 길에 말보로힐(Marlboro Hill) 쪽에 가서 일출을 보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말보로힐은 바다처럼 넓게 깔린 구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다바오의 아포산(Mount Apo)만큼 운해(Sea of clouds)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도를 통해 말보로힐이라고 적힌 곳까지 가서야 사가다와 같은 산골 마을을 여행하면서 귀찮다고 대충 정보를 확인하는 일은 옳지 못함을 깨달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좁은 산길에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으니 말보로힐의 운해 위로 해 뜨는 풍경을 보겠다는 계획은 즉시 포기했다. 2022년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한국인 사가다에서 실종"이란 제목으로 지방 신문에 나오고 싶지는 않다면 어둠 속에서 산길을 걷는 일은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말보로힐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트래킹 코스로 운영된다고 한다. 지도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거리가 상당하고 방향 표지판이나 안내문 없어서 초행길이라면 가이드가 꼭 필요한 코스이다.)

 

 

Sea of clouds


말보로힐을 보지 못함은 다소 아쉬웠지만 대신 사가다에서 바나웨로 가는 길에 누가 봐도 흡족할 만한 멋진 풍경을 가득 보았다. 산이 높고 깊어서일까, 어깨 뒤로 소리도 없이 해가 슬그머니 뜨는 것 같더니 길이 하늘과 맞닿은 듯한 곳에 이르자 운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의 바다에서 아직 아침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산이 수줍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구름이 온통 산자락을 감싸 안은 덕분에 산이 흡사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첩첩산중 깊은 산골을 덮으며 예쁘게 걸려 있는 무지개,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 위로 둥실 떠 있는 솜사탕처럼 맑은 구름,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아침의 공기까지. 2022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자연이 잔뜩 솜씨를 부려 차려놓은 화려한 잔칫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무지개
운해(Sea of clouds)

 

[필리핀 사가다 여행] 구름을 아래로 보는 마을 - 운해(Sea of clo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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