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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구야바노와 에스파다 갈치와 바나나

by 필인러브 2019.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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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엇을 주든, 거절 따위는 거절한다는 것이 내 삶의 태도인데 내가 쓰지 않는다면 다른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염치없이 어떤 물건을 주어도 잘 받아온다. 그리고 가끔 이 삶의 태도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며칠 전은 나의 멋진 생일이었고, 나는 3년 전부터 타루칸 마을에서 나의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이 파티에는 시간과 돈이 좀 들지만, 마을 꼬마 녀석들이 한꺼번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니 그보다 호화로운 생일 파티가 없다. 생일이라고 선물도 들어오는데, 고구마와 바나나, 그리고 구야바노(Guyabano) 등이다. 마을 사람들의 방글방글 웃음과 함께 방금 밭에서 캐낸 듯한 싱싱한 고구마 한 보따리와 함께 초록의 구야바노 세 개를 선물을 받아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진다. 그런데 마닐라로 돌아오자마자 공짜라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했다. 나는 구야바노 그 특유의 맛을 전혀 즐기지 않지만, 챙 아주머니에게 가져다드릴 생각에 신이 났던 것인데, 공짜 선물에 기뻐하기만 했지 그걸 대체 어떻게 들고 갈까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구야바노 두 개와 고구마 한 봉지는 생각보다 무게가 엄청나서 배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로 상태가 좋지 못한 곳이 마닐라인지라 자전거가 울퉁불퉁한 곳을 지날 때마다 허리 끝으로 통증마저 느껴지니, 지프니 타는 사람이 부럽기만 하다. 자전거를 타지 말고 지프니를 타고 왔었어야 했는데, 입에서 머리가 나쁘니 몸이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나온다. 


생긴 것과 다르게 몸 쓰는 일은 전혀 하지 못하는 인간이 나인지라, 비닐봉지에 담아 자전거 손잡이에 끼웠으면 좋았을 것을 요령 없이 가방에 담은 고구마가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구야바노이고 뭐고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라도 주고 싶었지만, 지난주에 챙 아주머니가 갈치 사는데 도와주신 일을 떠올리며 꾹 참기로 했다. 독한 감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 열흘 가까이 두문불출하다가 한참 만에 왕완딩 씨네 가게에 갔더니, 왕완딩 씨의 잔소리가 늘어지고 있었다. 잔소리는 물을 많이 마시고, 바이오 플루 약을 사서 먹으라는 것을 넘어 내 생활 방식 전반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나를 생각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생강을 잘게 슬라이드 하여 잘라서 겨드랑이에 붙였으면 열이 금세 내려갔을 것이라고 하는 식의 조언은 별로인지라 왕완딩 씨에게 할머니 같은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대꾸하고 있는데 마침 챙 아주머니가 오셨다. 챙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밥은 먹었느냐고 물으시더니, 딸에게 잔소리를 멈추라고 일러주고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서 달걀이며 갈치 사는 일을 도와주셨다. 마닐라 파사이에서 닭고기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다는 빅토리 파사이 몰(Victory Pasay Mall)의 재래시장에는 수산시장도 꽤 크게 형성되어 있어서 아주 커다란 갈치도 팔곤 했다. 시장에 얼마나 싱싱하고 큰 갈치가 있느냐는 오롯이 바다 마음이고, 가격이 얼마나 되느냐는 상인 마음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마닐라살이를 몇 년째 하여도 생선 가격 흥정하기 어려워하는 인간이 나였으니, 챙 아주머니가 시장 보기를 도와주겠다고 나서신 것이다. 그리고 그날, 에스파다(Espada. 타갈로그어로 갈치를 의미)의 가격은 1kg에 330페소였다. 내가 고른 갈치는 한 마리에 무려 480페소나 했는데, 어찌나 큰지 머리가 손바닥보다도 크고, 길이도 어린아이 키만 한 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갈치는 가격이 얼마가 되든 사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싱싱했다. 하지만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480페소를 부른다고 하여 나에게 그냥 순순히 480페소를 내밀게 할 챙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챙 아주머니는 이 사람이 한국인인데 감기로 아팠고, 한국에는 방우스나 틸라피아가 없고 갈치만 있어서 갈치를 먹고 싶어 한다고 구구절절 설명하더니 기어이 가격을 460페소로 만들어 놓고서야 내 지갑을 열게 하셨다. 그리고는 갈치에서 물 떨어지면 곤란하다면서 신문지로 꽁꽁 싸서 다시 포장하여 담아 내 손에 쥐여주더니, "저녁밥 많이 먹어라."라고 딱 한 마디만 해주셨다.


무거운 구야바노를 가방에서 꺼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상쾌하기만 했다. 해가 질 시간이라서 그런지 바람도 선선했다. 기쁘게 집으로 가는 나를 불러세운 것은 바나나 아줌마였다. 집에는 타루칸 마을에서 얻어온 바나나가 잔뜩 있었지만, 바나나가 많으면 동네 가드 아저씨들에게 간식으로 나눠 주면 될 일이다. 나는 기꺼이 80페소를 내밀고 가장 커다란 한 송이를 받아들었다. 나는 내 마음이 좋아진 것이 상쾌한 저녁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바나나의 달큰한 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챙 아주머니 ♥ 



에스파다(Espada) 한 마리가 이렇게나 토막이 많다. 한국 갈치와 맛이 거의 똑같다.  



▲ 먹음직스럽게 노랗게 구운 갈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 타루칸표 유기농 고구마



▲ 구야바노(Guyabano). 항암효과가 있다는 과일인데, 맛이 독특하다. 



▲ 고구마와 구야바노를 주고, 행복을 얻었다. happy는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땅콩 브랜드이다. 



▲ 바나나 사세요! 



 이 정도 크기의 바나나는 한 송이에 80페소이다.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구야바노와 에스파다 갈치와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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