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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금요일 퇴근 시간에 LRT 지상철을 타는 일이란

by 필인러브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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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금슬금 햇살이 그 기운을 잃어가더니, 마닐라에 저녁이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이 말인즉, 차가 막히기 시작할 것이란 이야기이다. 최근 필리핀 신문에 등장한 기사에 따르면, 필리핀의 교통체증으로 잃게 되는 기회비용이 연간 35억 페소(약 807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변변한 교통 인트라 없이 1,2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답게, 마닐라 사람들이 교통체증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9년이나 된다는 것이다. 40년 동안 경제활동을 한다고 전제하여서 하는 이야기라고 하니 경제활동 기간을 좀 길게 잡은 듯하지만, 절반이라고 생각해도 필리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고작 70여 년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하루 평균 1시간씩만 시간을 허비한다고 해도 그 손해란 대체 얼마란 말인가. 1시간을 아낀다고 하여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지프니나 트라이시클에 오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육체의 피로가 훨씬 더 쌓인다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마닐라 주요 도심의 집 렌트비는 물가에 비해 엄청나게 비싼 편이라서 직장인들의 출퇴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마닐라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인 마카티 시티의 경우 낮의 인구가 밤의 인구의 11배나 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마닐라에서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에 택시를 탄다는 것은 택시비를 엄청나게 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아진다. 오랜만에 렉토역에 왔다고 빵집에 들러 빵을 좀 산 데다가 디비소리아에서 산 거울이며 구슬까지 있어서 짐은 잔뜩이었지만, 그렇다고 택시 타느냐고 많은 돈을 쓰기는 아깝다. 택시비를 잔뜩 차비로 쓸 것 같았으면 동네 가게를 이용해주는 편이 낫다. 모르긴 몰라도 들어가는 돈도 거의 비슷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동네에서 해결하는 것이 금전적으로 훨씬 더 이득일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택시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체 집에 어떻게 갈지 잠깐 고민에 빠졌다. 지프니를 타도되겠지만, 파시그강 다리를 건너기도 전에 차가 막히기 시작할 것이 뻔해서 LRT(Light Rail Transit) 경전철을 타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곳이 필리핀 정부이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 마닐라 LRT지상철만큼은 시설 개선이 꽤 되었다. 투자를 제법 많이 한 것인지 지상철 매표소에서부터 상당히 좋아졌는데, 운이 좋으면 깔끔한 신형 에어컨 LRT를 탈 수도 있다. 이용하려는 사람에 비해 지상철 시설이 부족하여서 여전히 역 앞 100m 정도까지 줄이 늘어선 풍경을 흔히 보게 되지만, 비프카드(beep card)라고 불리는 교통카드가 나온 뒤로 표를 사느냐고 긴 줄을 서는 일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올해 초 필리핀 교통부(DOT)에서 폭탄 테러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병에 든 음료수를 들고 LRT나 MRT를 탈 수 없도록 한 뒤로 역 주변이 좀 더 깨끗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LRT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것은 낮에도 사람으로 꽉 차 있는 데다가 보안을 위한 짐 검사가 귀찮기 때문이다. 내 어깨에 있는 백팩에 얼마나 잡다한 것들이 들어 있는지 지퍼를 열어 보여주는 과정은 어쩐지 귀찮기만 하다. 등에 멘 가방이야 열만 그만이지만, 양손에 쥔 상자까지 열어보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무척 다행스럽게도 LRT1 Doroteo Jose Station에 있던 가드 아저씨는 말귀를 좀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기에 얼른 거울이라고 답했지만, 아저씨는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재차 뭐가 들었는지 물어왔다. 상자 가득 거울을 들고 오는 외국인을 보기란 어려운 모양이라 핸드폰을 꺼내 거울 사진을 보여주고 이걸 샀다고 설명을 했더니 전부 거울이냐고만 확인하고 그냥 승강장으로 보내준다. 등에 멘 백팩은 어깨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승강장으로 가게 된다니 마라믹 살라맛 뽀(타갈로그어로 '고맙습니다'의 뜻)이다. 그런데 내가 가드 아저씨랑 이야기하는 모습을 뒤에 있던 아저씨가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아저씨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려고 하였지만, 가드 아저씨가 막아섰다. 그리고는 단호한 얼굴로 내용물을 풀어 보여줘야 한다면서 아저씨의 커다란 짐 보따리를 풀게 했다. 여행박람회에서 거금을 투자하여 인트라무로스 이용권을 사고 받았던 인트라무로스 기념 교통카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나게 승강장으로 올라가면서 "같은 필리핀에 있기는 하지만 누나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릅니다."라고 말하곤 했던 국이 씨 생각이 났다.


+ 관련 글 보기 :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거울과 구슬 사이 - 디비소리아 재래시장(Divisoria Market)




LRT Doroteo Jose station



▲ 사람으로 가득한 LRT 지상철 안 



▲ 장난으로 응급버튼을 누르면 벌금을 5천 페소나 내야 된다.  



▲ LRT Central Terminal station. 코카콜라에서 협찬한 의자가 눈에 띈다.  



▲ 비토 크루즈역(LRT Vito Cruz station) 




▲ LRT 시설이 이렇게 좋아졌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 리베르따드 역(LRT Libertad station)



▲ 인트라무로스 교통카드. Philippine Travel Mart 2019 여행박람회에서 구한 특별한 교통카드이다. 



▲ 지상철 요금은 이동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  메이닐라드워터(Maynilad Water Services Inc.)에서 설치한 것인지 음수대도 역 안에 있다. 마닐라에서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딱히 마시고 싶지는 않다.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금요일 퇴근 시간에 LRT 지상철을 타는 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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