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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구석구석/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생활] 마닐라에서 캐리어 에어컨을 수리받는 일이란



한국에서 살아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지만, 필리핀에서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치는 일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 된다.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내 사용 방법의 문제인지 물건이 자주 고장 나는데, 고쳐 쓰려고 해도 쉽지 않다. 카메라 수리에 반년이 넘게 걸릴 정도이니, 제조회사와 고객 중 누가 더 느긋한지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긴,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믹서기가 고장이 나서 필립스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산타 크루즈(Santa Cruz)에 있는 수리점에 방문하면 고칠 수 있다고 알려주기에 두 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지난 달에 수리점이 폐업했다는 소리를 듣고 울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배낭 속에 든 믹서기의 묵직함을 느끼면서 필립스에 다시 전화해서 수리점 자리에 빨래방이 들어와 있었다고 말했지만 정보를 업데이트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나의 멋진 에어컨이 고장 났다. 캐리어 에어컨 회사 직원과 정겨운 대화를 하게 생긴 일은 심히 유감이었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신속 정확이란 단어 따위는 잊고, 빠른 서비스 따위에 대한 기대감은 단 한 조각도 갖지 않은 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에어컨 점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일이 그렇지만 에어컨 수리에는 소소한 장점과 커다란 단점이 공존했는데, 다행스러운 일은 필리핀 캐리어 에어컨은 온라인 채팅 상담을 해주기에 통화를 위해 핸드폰 로드를 충전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고, 불행스러운 일은 내 에어컨의 무상 수리 기간이 보름 전에 끝났다는 점이었다. 고작 2주 때문에 수리 비용을 내야 함은 아깝지만, 에어컨에게 이왕 고장 날 것이라면 왜 좀 더 일찍 고장 나지 않았느냐고 불평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서둘러 에어컨을 고쳐야만 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져서 오후 3시 정도가 넘어가면 숨이 헉헉 막힌다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연중 가장 덥다는 시기에 에어컨 없이 버티는 것은 절대 사양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그리고 4월 한 달 동안 혹독하고 고된 경험을 하고 나는 필리핀에서만큼은 절대로 캐리어 에어컨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고장 난 에어컨을 고치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아래와 같은 일이었다. 



■ 4월 1일 : 필리핀 캐리어 서비스센터로 서비스 접수

내 삶의 좌우명 중 하나는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자."이지만, 가끔 좌우명의 실천을 방해하는 자가 나타난다. 캐리어 에어컨 서비스센터의 상담원도 그중 하나였다. 작년에 수리받았던 부분이 다시 똑같이 고장이 난 것처럼 보이며, 작년에 그 수리를 받느냐고 일주일 넘게 걸려서 이번에도 그럴까 봐 걱정된다는 내 이야기에 상담원이 해준 말은 "네가 걱정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였다. 직원의 주장에 따르면 수리기사를 보내줄 터이고, 그러면 에어컨을 고칠 수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나는 작년에 에어컨을 사고 나서 사자마자 한 달도 되지 않아서 고장이 났었고, 당시 고장 수리에 일주일도 넘게 걸렸으며, 다시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똑같은 고장이 발생했음을 재차 설명했지만, 그 모든 것이 캐리어 에어컨 회사의 직원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된 까닭이 만날 고장 신고만 신청받아서인지 아니면 자기 물건이 아니라서인지 아니면 당장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서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여간 불친절하지 않았다. 암튼, 수리 기사는 다음 다음날이면 올 수 있다고 했고, 나는 A/S 하러 오는 김에 에어컨 청소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에어컨을 구매할 때 무료 클리닝 서비스를 1회 받을 수 있다고 안내받은 것이 떠올라서 아직도 유효한지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하기에 고장 수리를 받는 김에 에어컨 청소까지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4월 3일 : 수리기사의 거짓말

가만히 있어도 콧등에 땀방울이 맺힐 만큼 너무 더운 날이었다. 하지만 오전 9시에 온다는 에어컨 수리기사는 오후 2시가 넘어도 연락이 없었다. 캐리어에 연락하여 방문 일정이 잡힌 것이 맞느냐고 했더니, A라는 업체로 접수가 정확히 되어 있고, 오늘 중에 틀림없이 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 4시 30분이 되자 드디어 캐리어에어컨 수리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옛날 살던 집에 갔는데 내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 기록 때문에 주소를 헷갈릴까 염려되어 굳이 다른 집으로 이사했다는 설명까지 했던 나로서는 어이가 없었지만, 잠자코 새 주소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수리기사는 완전히 미친놈이 틀림이 없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을 욕하는 일은 사양하고 싶으니, 이건 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미친놈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은 회사 규정에 따라 고객을 15분 이상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그냥 간다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더니, 막상 통화 연결이 되자 자신들의 말만 해댔다. 나는 도착했다고 전화한 시각으로부터 15분이 넘지 않았노라고, 나는 너와의 통화 녹음이 있다고까지 이야기를 했지만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무려 8분 넘게 통화를 하다가, 시계를 보니 5시를 고작 10여 분 남긴 시간이었다. 짐작건대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니 그냥 퇴근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방문 받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캐리어 고객센터로 연락하여 수리기사가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고 항의를 했다. 그런데 캐리어 상담원마저 수리기사의 대기 시간이 15분을 넘었다고 우겨댔다. 상담원은 내가 통화 기록을 보고 몇 시 몇 분에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는지를 일일이 정리하여 넘긴 뒤에야 에어컨 수리기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내가 수리기사와의 전화 통화에 대한 녹취파일을 보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임 쏘리"라는 이야기를 하더니 새로 방문 날짜를 잡아 주었다.


■ 4월 12일 : 출장비를 내지 않으면 서비스 진행이 중단됩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은 것은, 원망하는 동안 내 기분이 언짢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번 방문 약속을 어긴 것 정도의 일이었다면 필리핀에서의 캐리어 에어컨 불매운동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방문한 에어컨 수리기사의 태도는 정말 가관이었다. 누구든 집에 방문하는 이에게는 음료수라도 한 잔 주어서 보내는 것이 내 철칙이지만, 물 한 잔 주기 아까울 정도였다. 왜 계속 주소를 묻는지 매우 의문이지만, 주소를 다시 또 묻고 난 뒤에 방문한 에어컨 수리기사는 내 에어컨을 힐끗 보는 척만 했다. 이렇게 대충 보고만 갈 것이라면 왜 그렇게 힘겹게 미루고 미루다 방문을 한 것일까. 그리고 에어컨 클리닝을 무료로 받기로 했다는 내 이야기를 믿지 않고 사무실로 전화해서 무료인가 대한 확인만 한참 한다. 그러더니 에어컨 작동 시 소음이 심하다는 내 이야기에 대해 기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음 때문에 밤에 잠을 자다가 깨곤 할 정도라고 말을 했지만, 에어컨은 기본적으로 소음이 있다는 것이다. 더워서 창문을 모두 열어두었던 터라 바깥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일까 싶어 창문을 모두 꽁꽁 닫아버리고 이래도 소음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소음이 있다고 인정을 하고는 더운지 슬그머니 창문을 연다. 하지만 수리기사가 소음을 인정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기사 왈, 확실히 무언가 문제가 있지만 집에서는 고칠 수 없으니 에어컨을 빼서 사무실로 가지고 가서 확인하고 고쳐야 한다나. 하지만 자신들이 지금 에어컨을 빼서 사무실로 가지고 갈 수는 없으니, 고객센터로 다시 연락하여 다음 방문을 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방문확인증 종이를 꺼내서 "방문 결과 수리가 요구되는 것으로 판단되며, 클리닝은 무료로 확인되었음"이라고 적더니 내게 사인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수리 기사, 끝까지 매우 사람을 불쾌하게 했다. 이제 그만 간다고 일어서면서 내게 아무런 종이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방문확인증으로 먹지로 된 종이를 쓰는 것이 한 장은 고객에게 주기 위함으로 알고 있는데 왜  둘 다 가지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회사 규정이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나는 억지로 종이를 뺏어 사진을 찍어놓고, 이런 식이면 너를 믿기가 어렵다고 대놓고 이야기를 해버렸다.


그리고 수리기사를 보내고 난 뒤 캐리어 서비스센터에 다시 연락하여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고, 상담 녹취 파일 및 사진 파일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이야기한 뒤에야 매우 단조로운 사과를 들을 수 있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형식적인 사과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상담원이 무슨 죄인가 싶어 그냥 참기로 하고 에어컨을 가지고 가는 날짜를 예약해달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짜증이 샘솟기 시작했다. 캐리어 에어컨에서 오전에 에어컨 수리기사가 점검 방문한 비용으로 250페소를 보내지 않으면 재방문 날짜를 예약해줄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오전에 온 사람이 대체 내게 무엇을 해주었기에 돈을 받아 가는지도 의문이지만, 집에 왔을 때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갑자기 돈을 안 내서 다음 서비스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하니 기가 찬 일이었다. 해준 일이 없다고 해도 방문한 것은 사실이니 돈을 내도 된다 싶었지만, 돈을 요구하는 방법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연락을 취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가 갑자기 "0081051917 PAYEE "라는 기묘한 은행 계좌 번호를 불러주고 지금 당장 돈을 보내라고 하면서, "우리는 수리를 해주고 싶은데 네가 돈을 내지 않아서 더는 서비스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오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리비 250페소를 내지 않으려고 괜한 항의를 하는 고객 취급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분통이 터지기 시작한 나는 돈이 필요하면 수리기사가 다시 와서 직접 받아가도록 처리하라고 화를 잔뜩 내다가, 이런 식이라면 A 업체의 수리 상태나 비용에 대해 전혀 믿을 수 없으니 방문 용역업체를 바꿔주길 요청했다. 캐리어 상담원은 A 업체 대신 B 업체라는 곳으로 바꿔줄 수는 있지만, 업체를 바꾸면 4월 22일에나 일정을 잡아 줄 수 있다고 해왔다. 나는 기분 나쁜 수리 기사를 다시 만나는 것보다는 열흘 동안 불편한 것이 낫겠으니 열흘 뒤에 와달라고 요청했다.




■ 4월 16일 : 주소는 묻고 또 물어야 정확하죠! 

아침부터 캐리어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는데,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10분 정도 뒤에 방문하려고 하는데 내 주소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방문한다고 듣지 못해서 집에 아무도 없으며, 주소는 이미 열 번도 넘게 이야기했다고 답장을 보냈다. 



■ 4월 22일 : 오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면 두 번 방문합니다. 

대망의 4월 22일, 오전 11시가 되자 캐리어 에어컨 수리기사가 세 명이나 방문했는데, 놀랍게도 작년에 에어컨 수리를 받을 때 만났던 아저씨였다. 물론 기억력 나쁜 내가 아저씨 얼굴을 기억할 리는 없다. 하지만 이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더니 대뜸 작년에도 서비스 신청을 하고 팁도 잔뜩 주지 않았느냐면서 나에 대해 아는 척을 해왔으니 작년에 왔던 수리기사가 틀림없었다. 벌써 일 년도 전의 일인데 나를 기억하고 있음에 깜짝 놀라주고, 그간 당했던 온갖 불편함을 토로하고, 출장비 250페소를 주고 에어컨 수리를 부탁했다. 아저씨는 내일 오피스 쪽에서 수리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안내를 할 것이라면서 나를 위로해주고 떠났다. 그런데 에어컨 수리를 위한 나의 길고 긴 여정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오후에 시작되었다. 누군가 집에 와서 문을 두들기기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캐리어에서 온 수리기사라나. 깜짝 놀라 오전에 벌써 방문하여 에어컨을 가지고 가지 않았느냐고 이야기를 하고 수리기사를 돌려보낸 뒤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그 결과 캐리어고객센터 상담원이 기존 방문 예약을 취소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요컨대 오전에 왔던 아저씨는 A 업체 소속이었고, 오후에 와서 허탕만 치고 간 사람이 B 업체에서 온 수리기사였던 것이다. 방문 기사를 바꾸고 싶어 열흘 뒤에나 방문 일정을 잡았던 것인데, 같은 수리기사를 만날 것이라면 대체 나는 왜 열흘 동안 더위에 시달렸단 말인가. 나는 화를 낼 기운조차 잃은 채 캐리어로 다시 연락하여 상황을 알려주고, 대체 내게 왜 이러냐고까지 이야기를 한 뒤 이렇게 된 이상 A업체에서 수리를 진행하겠지만 대신 수리 전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꼭 알려달라고 청했다. 캐리어에서는 에어컨을 고치기 전에 수리견적서(service qoutaion)를 이메일로 보내주고, 정확한 비용 안내를 해주겠노라고 장담을 해왔다.



■ 4월 24일 : 에어컨 잘 나오는 곳에서 일하고 있을 미스 레아 

필리핀 캐리어 고객센터의 홈페이지 채팅 서비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만 가능하다. 나는 오전 10시가 되자마자 연락을 해서 이틀 전에 에어컨을 가지고 간 뒤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음을 이야기했다. "수리가 즉시 되도록 확인하겠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we will monitor the repair to make sure that it will be done immediately and on time"이라는 문장에서 말하는 즉시(immediately)는 대체 언제이냐는 내 질문에 상담원은 한동안 답을 하지 않더니, A 업체로 연락해보고 수리가 언제 될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미운 놈은 끝까지 미운 짓만 한다. 오후가 되자 A 업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하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타갈로그어를 모르니 제발 영어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도 끊임없이 타갈로그어로 이야기하는 A 업체의 여직원 설명에 따르면 이미 에어컨 수리가 끝났으며 내일 배달을 해줄 터인데 대신 수리비로 1,200페소를 내야 한다고 했다. 수리가 끝났음은 기쁘지만, 수리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비용 안내를 먼저 받고 싶다고 누누이 이야기했음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청구된 수리 비용 내용을 물어보니 무료로 받기로 한 클리닝 청소 비용인 850페소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4월 1일 서비스 접수 때부터 무료라고 안내를 받았고, 4월 12일에 방문했던 수리기사가 청소가 무료임을 확인해간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지만, A 업체 여직원은 내가 다시 캐리어 고객센터로 연락하여 무료인지 여부를 재확인하지 않으면 1,200페소를 내야만 된다고 알려왔다. 그렇지 않으면 에어컨을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캐리어 에어컨 웹사이트의 채팅창을 열고 이번 상담이 무려 17번째 상담 시도임을 떠올리며 다시 또 사정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2시 40분에 시작한 상담을 4시가 넘어서야 끝낼 수 있었는데, 캐리어 측에서 클리닝 에어컨 청소 비용이 무료임을 확인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려서 배달 날짜를 지정해줄 수 없다고 우겨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길고 긴 대화를 함은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비용 안내를 먼저 하지 않고 수리가 된 것에는 이렇다 할 사과 말도 없이, 청소 비용이 무료임은 확실하지만 그 부분을 본사 담당자가 재확인하여 A 업체로 확인서를 넘기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만 해대니 잔뜩 화가 났다. 이런 식이라면 크리스마스나 되어서야 에어컨을 제대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나는 불편(inconvenience)이라는 단어 사용을 집어치우고, 좀 더 강도 높은 다른 단어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에어컨 청소가 무료임을 확인한 기록을 가지고 있음과 오전에 A 업체와 통화할 때는 내일 올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음을 거듭 이야기하고, 급기야 본사가 어디 있는지 주소까지 물어본 뒤에야 상담원이 서둘러 확인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 보스랑 이야기해야겠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고 이슈화시킬 거야!"라는 말까지 한 뒤에야 본사 담당자의 이름이 미스 레아이며, 레아의 싸인 없이는 서비스가 더는 진행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미스 레아는 에어컨 잘 나오는 사무실에 일하니 나에게 관심이 없겠지만, 나는 지금 한 달째 더위에 시달리고 있으며 만약 내일까지 에어컨이 오지 않으면 알라방에 있다는 본사로 가서 정식으로 항의 후 불매운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상담원에게서 내일(또 내일이다!) 오전까지 연락을 주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들인 노력에 비해 보잘것없는 성과였다.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오후, 온몸은 땀으로 끈적해서 캐리어 에어컨을 집어 던지고 새로 하나 사는 것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다시 또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 4월 25일 : 드디어 수리 끝 

아침부터 누군가 문을 두들기더니 에어컨 배달이 왔다나. 그렇게나 미리 연락 좀 하고 와달라고 외쳤지만, 결국 아무런 연락도 없이 방문한 것에 짜증이 났지만 일단 에어컨부터 설치되기를 기다렸다가 너희 서비스는 정말 형편없노라고 불평을 해댔다. 그리고 직원들을 보내고 나서 곰곰이 계산해보니 에어컨 하나 고치는 것에 꼬박 한 달이 걸린 셈이었다. 나는 나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다음에 다시 에어컨이 고장 나면 수리 따위는 받지 않고 버려버리기로 했다. 이제 필리핀에서 캐리어 브랜드의 에어컨은 절대 사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물론이다. 




▲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쇼핑몰의 가전제품 매장 



쇼핑몰마다 구비된 제품은 좀 다르지만, 제품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도 현금 일시불로 계산하겠다고 하면 카드 수수료 부분을 할인해주기도 한다. 










[필리핀 생활] 마닐라에서 캐리어 에어컨을 수리받는 일이란

- 2019년 4월, 필리핀 마닐라, written by Sali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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