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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여행] 카비테에 새로 공항이 생긴다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by 필인러브 2019.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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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고 해서 모든 가족이 친한 것이 아닌 것처럼, 미스터 브레인 씨는 내 머릿속에 있지만 친해지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서 아직 나와 친하지 못하다. 손톱처럼 예쁘게 다듬어 주기도 힘들고, 입술처럼 붉게 색칠해 주기도 어려우니 평소에는 존재감마저 희미하다. 하지만 뇌란 놈이란 무심하기도 하여서 도무지 그런 것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예뻐하든 혹은 예뻐하지 않든 상관없이 제 할 일만 한다. 기분이나 수면 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라는 도파민 역시 그렇다.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듦에 따라 도파민의 분비량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 도파민이 부족하면 새로운 것에 대한 흥분이 떨어진단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이 흐름을 좀 더 빠르게 느끼게 되는 것이라나. 보통은 10년마다 10%씩 도파민의 분비량이 줄어든다는데, 아무래도 내 뇌에 있는 도파민은 좀 더 게으른 것 같다. 낯선 장소를 가보는 것에 대한 기쁨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하는 소리이다. 나와 같이 취미가 지도 보기인 인간은 지도에서만 바라보던 장소를 실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설레하기도 한다. 


신문에서 올 연말이면 마닐라 근교 카비떼 어딘가에 새로 공항이 생긴다는 뉴스를 보았고, 나는 어릴 적부터 공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었다. 신체적인 조건이 부족하여 승무원은 되지 못하겠지만 공항 지상직 직원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이다. 그러니 그 공항이 대체 어떻게 지어지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장소가 보고 싶어지면 해결책은 단 하나. 보러 가는 것이다. 백수가 된 뒤부터 전화 요금이 아까워서 핸드폰을 쓰고 있지 않지만, 나에게는 인터넷 설치하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멋진 집 전화기가 있었으니 필리핀 교통부로 전화를 걸었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라면 로드를 상당히 썼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 통화하고 어디에서 공사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마닐라에서 카비테까지는 3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카비텍스(Cavitex)란 이름의 고속도로가 중간에 만들어져 있으니 오전 이른 시간을 이용하여 후다닥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글리 공항(Sangley Airport)에 다녀온 뒤 마카티 그린벨트 어디 근사한 곳에 가서 모처럼 맛있는 브런치를 먹으리라는 내 계획은 곧 불가능한 계획이었다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카비텍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에밀리오 아귀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을 지나자마자 차의 속도를 줄여야만 했던 것이다. 다들 어떤 사연으로 모여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인구집중도가 무척이나 높은 동네였다. 오래되어 보이는 주택들을 마주 보고 만들어진 좁은 도로 위에는 트라이시클과 지프니, 거기에 자전거와 사람들이 가득 엉켜있었고, 딱히 차가 막힐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도 없었지만,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일요일 오전에 이런 정도라면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얼마나 혼잡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랐던 것이 또 하나 남아 있었다. 상글리 공항이 만들어진다는 동네의 골목 끝까지 갔음에도 공항을 짓고 있다는 것에 대한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바로 옆에 공항 활주로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건설 현장에서 쓰일 법한 물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안내 표지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골목길에는 공사 소음조차 들리지 않았으니, 이곳에 공항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참말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Naval Base Heracleo Alano'라고 적힌 곳에 가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 아저씨를 붙잡고 공항이 지어진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군부대 안쪽을 슬쩍 보았지만, 도로 위는 한적했다. 요컨대 신공항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만한 그 어떤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늘씬하고 잘생긴 공군 보초병은 매우 친절한 남자였다. 공항 활주로 건설 현장이 보고 싶어서 왔다는 외국인은 처음 만나본 것인지 별 희한한 인간을 다 보겠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싹싹한 얼굴로 내게 근처 바랑가이 이름을 대주면서 그쪽에 공항 입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군인 아저씨가 알려준 바랑가이까지 가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시립 공공묘지와 아침부터 길게 하품하는 아저씨, 그뿐이었다. 일요일 오전 시간과 통행료 176페소를 투자한 것에 비해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이 드라이브가 무척이나 즐거웠던 것은 왜 필리핀 교통부에서 카비텍스 고속도로 입구에서 상글리 공항까지 연결하는 도로를 새로 만들려고 하는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리핀 교통부에서 이야기한 대로 24시간 열심히 공사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보고 싶었던 장소를 보기는 본 셈이니 나는 퍽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 관련 글 보기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⑧ 카비테 상글리 공항(Sangley Airport)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갈 수 있을까?




▲ 몹시 게으른 내게 있어 일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해지는 건 타루칸 마을에 아이들을 보러 갈 때뿐이지만, 공항을 보러 가고 싶었으니 예외적으로 좀 부지런해지기로 했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 위에 있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 마닐라와 카비테를 연결하는 카비텍스 고속도로 입구 




▲ 카비테 상글리 포인트까지 가려면 통행료를 두 번 내야 한다. 



▲ 고속도로를 나와서 아귀날도 박물관(Aguinaldo Shrine and Museum)을 지나면 바로 이런 좁은 도로를 만나게 된다. 



▲ 이쪽 동네는 지프니도 좀 특이하다. 버스처럼 꾸며져 있다. 



▲ 최근 도로 확장 공사를 한 것 같은데, 뭐가 바빴는지 전봇대까지는 치우지 못한 것 같다.  




▲ 그래도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임은 틀림없다. 맥도날드가 보인다.  




▲ 다들 천천히 움직여서 이래서야 비행기 놓치는 사람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 닭을 들고 가는 아저씨까지 모두 퍽 여유롭게 운전한다. 



▲ 드디어 공항을 짓고 있다는 동네 근처에 왔다. 



▲ 신문 기사로만 알던 상글리 포인트(Naval Station Sangley Point)가 바로 이곳이었다.  




▲  이 동네가 바로 상글리 공항 입구가 생긴다는 동네이다. 일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오전 이른 시간부터 뜨거운 햇살만이 가득했다. 어디를 봐도 한가한 동네라서, 신문을 읽지 않았더라면 공항이 새로 생긴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이다. 






▲ 카비떼 시립공공묘지(Cavite City Public Cemetery) 



▲ 마닐라로 다시 돌아가는 길 




▲ 히어로즈 아치(Heroes Arch)




▲ Primark Town Center - Noveleta



퓨어골드 쇼핑몰(Puregold Noveleta) 




[필리핀 마닐라 여행] 카비테에 새로 공항이 생긴다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 2019년 6월, 필리핀 마닐라, written by Sali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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