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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이발소를 가는 일이란

by 필인러브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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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오랜 기간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사람이었다. 곧 당황함을 감추며 친절한 미소와 함께 의자에 앉으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 재빨리 전기이발기를 손에 들고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머리 손질이 끝났는데, 서비스로 해주는 어깨 마사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듯 머뭇대더니 씩 웃는다. 주말마다 수십 명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지만, 그래도 외국인 여자를 손님으로 받는 일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지금은 모두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2019년, 그러니까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에만 해도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머리를 하고 마사지를 받는 일에 썼었다. 누군가 내 머리를 매만져 주는 일을 아주 좋아해서 더운 오후 시간이면 미용실 혹은 마사지샵을 방문하는 것으로 소일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마사지샵의 인테리어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관계로 마사지샵이야 대충 아무 곳이나 저렴한 곳을 가지만 미용실만큼은 꽤 비싼 곳을 갔는데 미용사의 실력을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저가의 중국산 약품을 사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말레이시아의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온통 녹여놓은 가슴 아픈 기억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미용실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곳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미용실을 다녀봤지만 마카티에서 가장 비싸다는 최고급 미용실에 가서도 크게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필리핀 사람의 한 달 월급에 가까운 돈을 내고 미용실을 나오면서 한숨을 쉰 적도 있다. 하지만 2020년 1월이 되면서 미용실 가는 일이 두려운 일이 되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필리핀 정부에서 미용실 등의 영업을 금지해서 방문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미용실이 다시 영업을 시작할 때까지 나는 꽤 오랫동안 자연 상태에 가까운, 그러니까 매우 지저분한 내 머리카락을 봐야만 했다.

그러니 미용실이 모처럼 다시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용실로 달려간 것은 나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었다. 미용사에게 지드래곤 사진을 보여주고 똑같이 붉게 염색해 달라고 말하는 일이란 얼마나 즐거웠던가. 하지만 즐거움은 짧고 고통은 컸다. 탈색 때문에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상해 버린 머리카락이 다시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짧게 머리를 자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색할 정도로 짧게 머리를 잘라버리고, 내 머리 따위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에게 계속 주입시켰다. 콘도 경비 아저씨가 내 뒷모습을 보고 나를 "꾸야(젊은 남자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부른 일은 좀 슬펐지만, 그럭저럭 몇 달이 지나면서 거울 속 내 모습에 익숙해졌고 나는 비싼 미용실 대신 저렴한 이발소에 가기로 했다. 정말로 내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리핀 마닐라 생활] 이발소를 가는 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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