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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마닐라 생활] 파식 시티(Pasig City)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받으려면

by 필인러브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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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사람은 아직 이부자리에 머물고 있을만큼 이른 시간이었지만, 거리 풍경은 저녁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주변을 저녁 시간처럼 어둡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아침부터 거리 곳곳에 물웅덩이가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찬 빗속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어 묵묵히 줄을 섰다.

파식 시청과 파식 재래시장 사이에 자리 잡은 '탕할랑 파시구에뇨(Tanghalang Pasigueño)'는 원래 공연장이지만,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파식 시티에서는 공연장을 백신 접종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전면의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이 빼곡하게 만들어져 있는 형태의 건물이라 백신 접종소로 쓰기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지만, 갑자기 백신접종센터를 지을 형편이 되지 않는 파식 시티로서는 공연장을 백신 접종소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쇼핑몰이며 초등학교까지 백신 접종소로 사용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탕할랑 파시구에뇨는 시내 중심에 있어 교통편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길게 구름다리가 만들어져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해도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외에는 장점을 찾기 어려웠다. 가장 난처한 것은 대체 얼마만큼 오래 줄을 서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흔한 안내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으니,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더욱더 슬픈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려고 모인 사람이 줄잡아도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은데, 사람 수와 비교해 너무나 조용했다. 직원도 보이지 않고, 대체 이 줄이 언제 끝나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항의하는 사람은커녕 불평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안내문 하나 받지 못하고 하염없이 대기해야 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관공서에 갈 때마다 긴 줄을 서본 사람들답게,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입을 열면 바이러스가 들어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말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데 줄은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나 조용한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한 채 한 시간은 구름다리에 서서, 한 시간은 천막 아래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그렇게 참을성 있게 두어 시간을 기다린 덕분에 극장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고 바로 백신 접종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증상은 없는지 간단한 문진 시간을 갖은 뒤 다시 줄을 서야만 했다. 그래도 두 시간 넘게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무료하게 보낸 탓에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했다. 하지만 이 흡족함은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바로 사라졌다. 공연장은 생각보다 넓었지만, 아무리 봐도 백신 접종소로 쓰기는 부적절했다. 딱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객석 의자에 앉아 무대 위에 만들어진 백신 접종소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답답함만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일단 주변이 너무 어두웠다. 시력이 꽤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침침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객석 의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무대로 올라가서 주사를 맞는 식으로 꾸며진 동선도 여간 불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을 해주는 데스크가 불과 여섯 개밖에 되지 않았다. 주사를 맞는 것 자체는 금방이라고 하지만, 이래서야 바깥 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종일 있어야 할 직원들을 보니 불평의 말은 쑥 들어갔다. 주사를 놓는 의사도, 길을 안내하는 직원도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응대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서도 피곤함이 보였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에도 이렇게 피곤한데, 이런 환경에서 온종일 백신 주사를 놓으면 얼마나 힘들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극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간호사들이 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자 병원을 떠나는 바람에 필리핀 의료 시스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힘들다는 한 마디의 이야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단함이 느껴졌다. 신문에서 의료진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보건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필리핀 마닐라. 파식 시티 
스마트 통신사에서 내건 BTS 빌보드 광고판이 눈에 띈다. 
 탕할랑 파시구에뇨(Tanghalang Pasigueño)
Commission on Elections  
백신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구름다리 위에서부터 긴 줄을 서고, 건물 왼쪽에 마련된 이 공간에 와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건물 안에 마련된 백신 접종소로 갈 수 있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서 의료진들의 숫자를 보는 순간 왜 그렇게나 줄이 천천히 줄어들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으니, 크게 비용이 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민들이 좀 더 편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동선이라도 바꿀 수 있을 터인데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내 바람일 뿐이다. 아마도 백신 접종이 모두 끝날 때까지도 이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마닐라 생활] 파식 시티(Pasig City)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받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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