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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생활•사회•문화

[필리핀 생활] 비싼 수도세는 받아 가면서 우기인데 왜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일까?

by 필인러브 201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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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기상청(PAGASA)에서 우기(rainy season)가 시작되었다고 공식적인 발표를 한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필리핀 뉴스를 보면 여전히 물이 부족하다고 나온다. 건기도 지났는데 왜 수도국에서는 여전히 단수 지역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 수도사업 민영화와 수도세 인상 

 

국가가 공공 서비스로 제공하던 분야를 민간에게 위탁하는 일이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기나 수돗물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것만큼은 민영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동안 시행하였던 민영화의 성과분석 결과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영화의 부작용을 말하면서 예시로서 늘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20여 년 전에 마닐라 상수도 민영화를 단행했는데, 민영화의 여러 가지 부작용을 잔뜩 보여주고 모든 부문을 민간에 맡기는 것은 옳지 않았다는 교훈을 주었을 뿐이다. 필리핀의 민영화 사업 결과는 누가 봐도 실패로 평가된다. 수도 공급은 원활하지 않은 데다가 서비스는 엉망이고, 수도요금은 비싸기 짝이 없다. 치솟은 물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난한 이들이 수도꼭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 수도국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이 부자가 되어갔을 뿐이다. 그런데 민영화를 단행하기 전까지 필리핀 정부의 계획안을 보면 온통 핑크빛 기대로 가득했다. 경영효율이 높아져서 24시간 수도 공급이 안정적으로 된다는 말이나, 수질이 개선되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수준으로 깨끗한 수돗물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는 말은 무척이나 달콤하게 들렸다. 수도세도 합리적으로 책정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에 필리핀 정부 시스템은 온통 부정과 부패의 천국이었지만 특히 수도와 전기는 온갖 비리의 온상이었다. 그래서 공공 부문이 민영화되면 정부조직이 축소되고 공무원의 부패가 사라진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1997년 필리핀 정부는 수도사업을 민영화하기로 하고 공개 입찰에 들어갔다. 메트로 마닐라를 동서로 양분해 마닐라 워터(Manila Water Company, Inc.)와 메이닐라드 워터 서비스(Maynilad Water Services Inc.)가 각각 선정되었고, 민영화 관련 양허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상수도 민영화가 가져온 결과는 절대 달콤하지 않았다. 민영화 초기에 수도국 직원 중 절반 가까운 인원이 직업을 잃었을 때까지만 해도 남의 일 같았지만, 수도세가 껑충 뛰기 시작하면서 상수도 민영화는 모두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비극은 수도세 인상이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령화된 수도관을 개보수하는 비용마저 수도요금에 포함되었으니, 수도세에 여러 가지 항목이 자꾸 추가되더니 수도 요금이 한꺼번에 400%나 인상되기도 했다. 페소 가치 하락 및 수익률 저하를 이유로 기본료까지 올라가면서 결국 수도요금의 1톤당 평균가격이 30페소를 넘어섰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고 해도 엄청난 가격 인상이었다. 서민들에게 월급의 상당 부분을 전기와 수도 요금으로 내는 상황이 닥쳐왔다. 현재 메트로 마닐라에 있는 주거용 콘도에 살고 있다면, 물을 단 한 방울도 쓰지 않더라도 월 3천 원 정도의 기본료를 내야 한다. 누구에게는 과자 한 봉짓값이 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는 적잖은 돈이다. 하지만 수도세 납부를 미룰 수는 없는 것이 한 달만 내지 못해도 수도 공급이 바로 중단되고, 다시 연결하려면 메이닐라드 워터에 251페소나 되는 연결 비용을 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없는 이들에게는 매달 납부해야 하는 수도요금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수도 연결 비용은 회사마다, 그리고 단수 기간이 Temporarily Closed 인지 Permanently Closed에 따라 달라진다. Permanently Closed 의 경우 수도 연결비가 9,212페소나 된다.) 




상수도 민영화 이후 마닐라 지역의 수도요금 변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지역에서 가정용 상수도 요금의 물 1톤당 평균가격은 아래와 같이 인상되었다. (단위:페소)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메이닐라드워터

4.96

4.96

5.8

6.13

10.79

11.39

11.39

11.39

19.72

21.12

21.12

23.05

27.24

28.29

30.43

32.92

마닐라워터

2.32

2.32

2.61

2.76

4.22

4.51

10.06

10.4

13.95

14.94

14.94

19.64

21.91

23.08

25.11

27.44


- 자료 출처 : 마닐라 도시상수도공사(MWSS. Metropolitan Waterworks and Sewerage System)



# 필리핀에 물이 부족한 진짜 이유 


'메이닐라드워터'와 '마닐라 워터'에서는 불라칸 지역에 있는 앙갓 댐(Angat Dam)에서 물을 끌어와 메트로 마닐라의 각 가정에 수도를 공급한다. 라메사댐(La Mesa Dam)이나 라구나 호수(Laguna Lake)에서도 물을 끌어와 사용하기는 하지만 주요 수원은 역시 앙갓 댐이 된다. 그런데 7월 현재까지도 앙갓 댐의 수위가 여전히 160m를 나타낸다고 하니 물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가 계속 내려만 준다면 댐의 수위가 정상 수준인 180m까지 곧 회복되리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불라칸에 비가 계속 오리라는 낙관론적인 관측만 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비가 계속 내리는 우기에도 제한급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물 부족 사태의 발생이 건기에 엘니뇨 현상이 겹쳤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큰비가 왔음에도 수도국에서 제한 급수를 논하는 것이 날씨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댐의 용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물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인구보다 물 인프라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날씨가 회복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수자원 확보를 위한 인프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지속해서 논의되어 온 부분이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에서 논의만 하는 와중에 마닐라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인구는 늘었는데 그 인구를 뒷받침할만한 상수도 시설이 생기지 못했으니 물 부족 사태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 내 단수 사태에 그치지 않았다. 설거지하고 샤워를 하는 일상적인 일이 특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물이 부족해지면서 일회용 식기를 쓰거나 접시에 비닐봉지를 씌어 사용하게 됨으로써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난 것이다. 물 부족이 일회용품의 과다 사용을 불러오고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끌고 오는 셈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가 와서 저수지의 수위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앙갓댐에 대한 의존을 완화하고 점점 늘어나는 물 수요를 충당할 수 있도록 새로운 수원 개발을 위해 칼리와 댐 프로젝트(Kaliwa dam project)를 조속히 시작하고, 노후한 상수도관을 교체하여 물이 누수로 새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폐수처리시설을 확장하여 수질 오염을 방지하고, 수질 개선을 위해 바다와 호수의 청소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필리핀의 산림 면적이 매년 2.1%씩 줄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물 공급원인 숲을 복원하는 등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하지만 수도업체의 설비투자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마닐라 도시상수도공사(MWSS. Metropolitan Waterworks and Sewerage System)에서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기라고 쉴 새 없이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지금의 물 부족 사태가 8월이나 9월이 되어야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이 오롯이 엘니뇨 현상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물이다. 필리핀처럼 더운 나라에서 물이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누에바 에시하(Nueva Ecija)에 있는 판타방간 댐(Pantabangan Dam)



▲ 서민들에게는 수도요금 내는 일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필리핀 생활] 비싼 수도세는 받아 가면서 우기인데 왜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일까? 

-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 written by Sali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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