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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정치] 인권운동가는 아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테러방지법을 염려하는 이유

by 필인러브 2020.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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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10일의 필리핀 스타 신문 1면. 밤 11시가 되자 마누엘 로하스와의 표 차이가 확연히 나타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통령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대통령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이 인권침해가 되면 곤란하죠."



2016년 5월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라는 공약을 내세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이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필리핀 대통령이다. 5,400여만 필리핀 유권자 중 무려 1,600만 명이 두테르테를 선택했고, 당시 2위 후보인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보다 660만이 넘는 표 차로 선거에 승리했다. 당시 두테르테 대통령은 범죄 소탕과 부패 척결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워서 필리핀 대중의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강력한 규제 정책으로 처벌하는 사람(Punisher)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했지만, 부패한 공무원을 모두 쓸어버리겠다는 그의 외침은 신선하게 들렸다. 기존 정치 기득권 세력과 다르게 각 지방의 독자성을 강화한 정책으로 지방분권형 정치 체계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끝내겠다는 식의 이야기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의 레이테 섬(Leyte)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부터 다바오에서 생활한 데다가 다바오의 시장을 22년이나 한 경력을 바탕으로 필리핀 최초의 민다나오 출신의 대통령으로 대선길에 올랐다. 좌익 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필리핀당(PDP-Laban) 소속 후보로 출마했는데, 모계 쪽으로 마라나오 부족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세우고 민다나오 지역 내 경제발전과 내전 종결을 외치며 무슬림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이 선거 결과에 대해 필리핀에 만연한 범죄와 부패,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필리핀 국민의 마음이 모인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편의점에서는 투표 참여를 인증하면 콜라를 무료로 주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최근 필리핀 뉴스 1면을 장식한 것은 테러방지법(Anti-terrorism bill)이다. 지난 7월 3일 두테르테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법률 제정 절차에 따르면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은 이제 전국적으로 신문에 게재된 후 15일 후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공화국법 11479호(Republic Act No 11479)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법률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리핀의 입법 절차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필리핀에서는 상원과 하원 모두 법률안 제안, 심의 및 의결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입안자가 제출한 법률안은 국회 사무처에서 법안 일련번호가 매겨지게 되고, 심사 과정을 가지게 된다. 법안에 대한 토론과 수정을 거친 뒤에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법안이 통과되면 이 법안은 대통령에게 보내진다. 대통령이 승인 서명을 하면 법률로 공포되고 곧바로 발효된다.


테러방지법(Anti-terrorism bill)의 경우 이미 지난 2월 26일 상원을 통과했다. 한국에서 프로 권투 선수로 잘 알려진 매니 파키아오(Manny Pacquiao)는 10여 년 전부터 필리핀 정치계에 입문하여 현재 필리핀 상원의원으로 활동 중인데, 찬성표를 던졌다. 어쨌든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뒤로 미루어진 상황에서도 이 법의 입법만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6월 3일, 필리핀 하원에서는 찬성 173표, 반대 31표, 기권 29표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상원과 하원 모두 통과한 법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반대 의사로 거부권을 행사하면 다시 재심에 들어가게 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하원에서 통과된지 한달이 지난 지난 금요일 대통령실 대변인 해리 로크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테러방지법(Anti-terrorism bill)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테러방지법에 대해 필리핀 정부에서는 "테러를 근절하려는 정부의 다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국민에 대한 억압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필리핀 인권위원회의 이야기를 기우라고만 보기 어려운 것은 이 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인권법은 잊어버려라"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해왔던 두테르테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벌인 마약 퇴치 과정에서 수천여 명이 살해됐다는 논란을 가진 그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국민은 사살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체포·구속 영장 없이도 테러 용의자를 최장 24일간 구금할 수 있게 하는 테러방지법을 만든다고 하니 상당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법의 집행을 사법부처럼 독립된 곳에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법에 따르면 내각의 장관이나 공무원들로 구성된 테러방지위원회(Anti-Terrorism Council)의 허가를 바탕으로 용의자 체포가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내각의 장관이나 공무원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니 대통령을 불쾌하게 한 단체는 "테러 방지를 위한 포괄적인 접근 방식"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될 수 있다. 그리고 피의자가 신체적, 도덕적 또는 심리적 고문을 당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절차도 사라진다.  정부는 테러용의자에 대한 감시를 최대 60일 동안 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에 특별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을 감시 또는 도청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되니, 표현의 자유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행위가 테러 행위가 되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폭발물이나 무기의 제조 및 유통"이야 그렇다고 해도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가와 민간의 시설 및 재산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도 테러 행위도 규정되니, 조금이라도 정부를 비판하면 테러행위라고 몰아붙여서 정치적인 보복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행위는 테러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시민단체의 자율적인 활동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래저래 권력이 남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민주주의로부터 뒷걸음치는 격이라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시내 곳곳에서 테러방지법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미 대통령의 서명까지 마친 터라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하긴, 지금에 와서 2016년 대선 결과를 바꿀 수도 없고 어찌하랴. 그리고 이미 1811년에 프랑스의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라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서명을 하였으니, 테러방지에 대한 법안은 이제 공화국법 11479(Republic Act No 11479)이 되게 된다. 이 법은 모두 33장에 걸쳐 작성되었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두테르테 대통령이 7월 3일 서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필리핀에서 법안이 대통령 서명을 거쳤다는 이야기는 정식 법률로서 확정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필리핀 상원과 하원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견은 위와 같았다. 



※ 위의 내용은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STAR

https://www.facebook.com/PhilippineSTAR/photos/pcb.1803302496490090/1803300239823649/?type=3&theater

· Lawyers, Other Groups Terrified By Anti-Terror Bill. Here’s Why

https://onenews.ph/lawyers-other-groups-terrified-by-anti-terror-bill-here-s-why

· Philippines: New Anti-Terrorism Act Endangers Rights

https://www.hrw.org/news/2020/06/05/philippines-new-anti-terrorism-act-endangers-rights

· Duterte Signs Antiterrorism Bill in Philippines Despite Widespread Criticism

https://www.nytimes.com/2020/07/03/world/asia/duterte-antiterrorism-law-philippines.html

· Duterte signs 'dangerous' anti-terror bill into law

https://www.rappler.com/nation/263289-duterte-signs-dangerous-anti-terror-bill-into-law





 [필리핀 정치] 인권운동가는 아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의 테러방지법을 염려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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