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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필리핀 역사•정치

[필리핀 마닐라] 즐거운 한 시간, 말라카냥궁 대통령 박물관 투어

by 필인러브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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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곳에 살아요?"

"아뇨. 너무 넓다고 이곳에서 살기 싫어하세요. 두테르 대통령은 강 건너 말라카냥 공원 안에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라카냥궁(Malacanang Palace)의 박물관 안내원은 척 봐도 가정교육을 잘 받은 티가 났다. 에어컨 잘 나오는 시원한 방에 있다가 왔는지 흐트러짐 하나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매우 친절하게 박물관 전시물에 대해 안내를 해주는데, 방문객이 지루하지 않게끔 안내 중간중간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나 자랑거리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안내를 해준다는 기분이 살짝 들었던 것은 이멜다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모두 잘 아시는 분이죠?"라는 식으로 대충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1950년대 중반 라몬 막사이사이(Ramón Magsaysay) 대통령이 재임했던 1950년대 중반만 해도 말라카냥궁의 정원에서 시민들이 모여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다고 크게 자랑을 했다. 네가 필리핀 대통령이라고는 마르코스밖에 알지 못하겠지만, 필리핀 역대 대통령 중에도 괜찮은 대통령이 있었다고 전하고 싶은 눈치이다. 하지만 박물관 안내원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내가 최근 몇 달 사이에 필리핀의 역사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공부했다는 것이다. 잘 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마누엘 L. 케손의 초상화를 보고 누군지 알 정도는 공부했으니 라몬 막사이사이가 보기 드물게 좋은 인물이었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책에서만 보았던 필리핀 전 대통령의 실제 흔적을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다. 전시물을 원하는 만큼 오래 볼 수 있지는 못하여 아쉬웠지만, 그래도 말라카냥궁 박물관 견학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즐거웠다. 


각설하고, 안내원의 자랑대로 막사이사이 대통령 시절처럼 말라카냥궁이 계속 국민을 위한 휴식처가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1957년 세부에서 마닐라로 돌아오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갑작스럽게 서거했다.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뒤를 이어 부통령이던 카를로스 P. 가르시아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특별히 내세울 만한 업적은 보이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1961년 대선에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은 1965년 선거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패하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1965년에서 1986년까지, 무려 21년 동안 장기집권을 했다.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바쁘던 그 시절, 말라카냥궁은 베일에 싸인 채 일반인들에게 비공개되었다. 나중에 1986년에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취임한 뒤 말라카냥궁의 시설 일부를 개방했지만,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때처럼 궁전 전체를 방문객에게 개방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본관 직무실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박물관(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로 사용되는 칼라야안 홀 구역(Gate 6)만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넓고 넓은 말라카냥궁 안에서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칼라야안홀이라는 건물이다. 칼라야안홀은 1920년에 건축된 건물로 말라카냥궁 최초의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고 한다. 당시 유명 건축가였던 랄프 해링턴 도안(Ralph Harrington Doane)이 설계했다고 하는데, 미국 식민지 시절 지어진 공공 건축물 중 가장 잘 보존된 건물로 평가된다. 랄프 해링턴 도안은 캐나다인이었지만 마닐라의 공공건물 건축에 상당히 많이 참여했는데 필리핀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Fine Arts)과 마닐라 중앙 우체국(Manila Central Post Office) 등을 설계하기도 했다. 아무튼, 여행사 사이트에서 말라카냥궁 박물관(Malacañang Museum) 투어를 하면 스페인 식민지 시기 건축된 건물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보게 되는데, 사실 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칼라야안홀은 미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데다가, 말리카냥궁 박물관 투어 중에는 칼라야안홀 외 다른 건물을 볼 수 없다. 건물 내에서 박물관 안내원과 함께 관람 중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칼라야안홀이 서 있는 게이트 6(Gate 6) 바깥으로 사진 촬영조차 어려운 형편이니, 다른 구역으로 가서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어진 건물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쨌든, 1920년대만 해도 칼라아얀홀은 레오나드 우드(Leonard Wood) 총재의 사무실 및 손님용 침실 용도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35년에 마누엘 L. 케손(Manuel Luis Quezon) 대통령이  필리핀 자치령 연방 정부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계속 건물 시설이 확장되었고, 1946년에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필리핀 대통령 관저로 활용되었다. 마르코스 시절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았지만,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간 뒤  '전 대통령 박물관(Former Presidential Museum)' 이란 이름으로 일반인에게 내부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말라카냥에서는 3년에 걸친 보수 작업 끝에 내부를 박물관처럼 꾸몄는데, 필리핀 대통령들의 공적과 업적을 나타낼 물건과 마닐라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주요 전시물이 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대 노이노이 아키노 시절에 '말라카냥 도서관(Malacañang Library)'과 합병하였고, 그 뒤 현재와 같은 프레지덴셜 뮤지엄 언드 라이브러리(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로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현재 박물관 측에서는 마누엘 L. 케손, 엘피디오 키리노, 마누엘 로하스 등 전 대통령 집무실을 전시실로 공개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방에 Magsaysay Dining Room, Garcia Room, Laurel Room, Marcos Room, Macapagal Room 등으로 이름을 붙여 관리하고 있다. 


+ 관련 글 보기 :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말라카냥궁(Malacanang Palace)이 필리핀 대통령 관저가 되기까지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대통령 관저, 말라카냥 궁전의 대통령 박물관 투어 신청 방법



박물관 견학을 위해서는 말라카냥궁 6번(Gate 6)  게이트 앞으로 가면 된다. 



칼라야안 홀(Kalayaan Hall)



▲ 건물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동상이다. 동상 아래에는 "Malacanang is the palace for the people.(말라카냥궁은 국민을 위한 궁전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첫 번째 전시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방에서 볼 것은 전시품보다는 나무로 된 벽과 천장이다. 자세히 보면 조각이 무척이나 세밀하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Isabelo Tampinco 와 Graciano Nepomuceno 등 필리핀의 유명 조각가가 참여한 작품이라고 한다.






▲ 방에 있는 4개의 거울은 1878년에 만들어진 거울이라고 한다. 건물보다 오래되었다고 박물관 안내원이 무척이나 자랑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득표율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프락세로스 플로어라는 이름의 후보이다. 그는 1961년 투표에서 0표를 얻음으로써 정직한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본인조차 자신을 뽑지 않은 것이다. 



▲ 마누엘 L. 케손(Manuel L. Quezon) 대통령 집무실 




▲ 벽면이나 가구는 카마공이라는 이름의 아이론 우드(ronwood)로 만들어졌다. 1930년대에 손으로 조각했다는데, 단단한 목재라서 그런지 별다른 손상 없이 여전히 그대로이다.



▲ 퀘존 대통령의 집무실이 필리핀에 첫 번째로 만들어진 에어컨 룸이라고 한다. 천장 아래를 보면 에어컨의 찬바람을 가지고 오기 위한 공간이 뚫려 있음을 볼 수 있다. 



▲ 나무 조각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조각을 조각가 한 사람이 모두 했다고 한다.  



▲ 이곳 집무실에 있는 책상은 퀘존 대통령(재임 기간: 1935년 11월 15일–1944년 8월 1일)이 쓰던 책상으로 마르코스 대통령까지 실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샹들리에가 대통령 박물관의 자랑인가보다. 이 방에 있는 샹들리에는 1930년대 후반에 마누엘 L. 케손 대통령이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산 것이라고 한다.



▲ 엘피디오 키리노(Elpidio Rivera Quirino) 대통령 전시실엘피디오 키리노실 대통령의 재임 기간(1948년 4월 17일 ~ 1953년 12월 30일)은 한국전쟁 시기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키리노 정권은 참전을 결정하였고, 7,450여 명의 필리핀군 병사를 필리핀 원정군(PEFTOK)으로 한반도에 파병했다. 마카티에 있는 마닐라 사우스 묘지에 무덤이 있다.







▲ 엘피디오 키리노 전시실은 1930년대 만들어졌다는 테이블이 방을 가득 자치하고 있다. 벽에는 농촌의 풍경을 주로 그렸던 필리핀의 유명 화가, 페르난도 아모르솔로(Fernando Cueto Amorsolo)의 그림과 함께 댄서의 청동상 등 미술품이 진열되어 있다. 박물관 안내원의 샹들리에 자랑은 이 전시실에서도 빠지지 않았는데, 이 방에 있는 것은 비엔나에서 왔다고 한다. 




▲ 마누엘 로하스(Manuel A. Roxas) 대통령 전시실.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은 1946년 7월 4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필리핀공화국 (Republic of the Philippines)의 정식 필리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48년 4월 15일 팜팡가에서 연설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해서 당시 부통령이던 엘피디오 키리노가 대통령직을 맡게 되었다. 사후 그를 기리는 뜻에서 그의 고향인 카피스 시는 특별히 1949년 로하스 시로 명칭을 개칭하였다. 100페소 지폐에 있는 인물이다.



▲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의 방에 있는 테이블은 아주 커 보이지만, 마르코스 전 대통령 때에는 이멜다가 테이블 모자란다고 하여 회의실을 다이닝룸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멜다는 따로 손님 접대용 방을 만들었는데 무려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고 한다.





▲ 현 대통령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전시실 





▲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에서는 쌀로 그린 초상화와 나무 불로 만든 초상화 등을 볼 수 있다.



▲ 이 초상화는 시각장애인용으로 제작되었다. 





▲ 중앙 라이브러리에는 역대 대통령과 영부인에 대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관람객의 눈길을 끈 것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실물 크기 사진이다. 이멜다가 마르코스보다 키가 컸다고 하는 것은 맞는 이야기 같지만, 이 등신대를 보면 마르코스의 키가 170cm이었다는 것은 좀 과장된 이야기 같다. 




▲ 엘피디오 키리노 대통령은 2차대전 때 일본군에게 부인을 잃었고, 2명의 자녀만 살아남아서 딸 빅토리아에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겼다고 한다.  




▲ 이멜다 마르코스 




피델 라모스 대통령의 영부인 아멜리타 라모스(Amelita Ramos). 퍼스트 레이디로서 파식 강의 보존을 위한 환경 캠페인에 힘썼다고 한다.





▲ 영부인들의 사진 끝으로는 이멜다 마르코스가 수집한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안내원이 가격이 얼마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조각상이라고 하면서 비슷한 조각상의 페소 가치를 알려주었는데, 언뜻 계산이 어려울 정도의 금액이었다. 조각상 뒤로 벽에는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 (Joaquín Sorolla)의 "Las Nereidas"라는 제목의 유화도 있는데, 이 그림 역시 너무 비싸서 얼마인지 가격을 따지기 어려운 그림이라고 한다.





▲ 벽에는 필리핀 국기가 걸려 있다. 50페소 지폐에 그려진 인물인 세르히오 오스메냐 대통령의 싸인 있는 국기로 맥아더 장군의 전 운전사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의 국기라서 그런지 붉은색이 위쪽에 있다. (필리핀 국기는 색깔로 전쟁 시임을 표현한다. 전쟁 시에는 국민의 용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부분이 상단으로 배열되는 식이다)





▲ 필리핀 15대 대통령이었던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 



▲ Map of Camp Crame and its environs. 필리핀 경찰 본부(Camp Crame) 주변 지역의 지도가 스케치 되어있는 이 칠판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1986년 EDSA 혁명 기간 개혁 군의 위치와 힘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지도를 보면 당시만 해도 EDSA 도로가 매우 한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입었다는 의복  




코라손 아키노(Corazon C. Aquino)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역대 필리핀 대통령 중 '가장 겸손했던 서민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안내원 이야기에 따르면 대통령의 자리를 이용하여서 그의 가족 및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고, 그 어떤 대통령보다 국민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필리핀 마닐라] 즐거운 한 시간, 말라카냥궁 대통령 박물관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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