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 개가 넘는 섬나라 필리핀에는 어떤 신화가 있을까?
필리핀 창세신화(건국 신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대나무에서 나왔다는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이야기이다. 참고로 필리핀어로 말라카스(Malakas)는 강한(strong)을 의미한다. 마간다(Maganda)는 아름답다(beautiful), 사랑스러운(lovely), 좋은(good), 멋진(nice)을 뜻하는 필리핀어이다.
아래 이야기는 필리핀 창세신화인 말라카스와 마간다의 이야기 중 하나를 가져다가 내 마음대로 번역한 것이다. 말라카스와 마간다(Malakas at Maganda)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많이 볼 수 있다. 카이트(Kite)를 아미한(Amihan)이란 이름의 황금독수리로 표현하기도 하며, 캅탄(Kaptan)이란 이름의 신이 대나무를 심었는데 이 대나무가 자라면서 반으로 나뉘어서 남자와 여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필리핀 비사야 지방에서는 인류 최초의 남자와 여자의 이름을 말라카스와 마간다 대신 시칼락(Sikalak)과 시카베이(Sikabay)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상이 시작될 때 ,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 그리고 카이트(Kite)라는 이름의 새만 살았다. 흡시 독수리처럼, 또는 매나 솔개처럼 생긴 이 새는 대단히 몸집이 큰 녀석이었다. 그 큰 몸집으로 온종일 헤매고 다녔지만 아직 땅이 만들어지기 전이라서 마땅히 쉴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쉴 곳을 찾던 카이트는 계략을 하나 짜냈다. 바로 하늘과 바다 사이에 싸움을 붙여보자는 것이었다.
"하늘아, 하늘아. 너 그거 알아? 바다가 널 좀 우습게 알더라."
"그거 정말이야?"
"진짜지! 하늘이 널 가만두지 않겠다던데?"
“뭐라고? 그렇다면 내가 먼저 바다를 혼내야겠어!"
카이트의 말을 듣고 하늘은 화가 잔뜩 나서 바다를 만나면 혼을 내주겠다고 소리쳤다. 이 이야기를 듣고 카이트는 바다에게 갔다.
"바다야, 바다야. 너 그거 알아? 하늘이 널 혼내주겠다던데?"
"뭐라고? 어디 감히? 하늘에게 내 힘을 보여주어야겠네!"
카이트의 이야기를 들은 바다는 잔뜩 화가 나서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고, 바다에는 파도가 거칠게 일어났다. 그러자 이를 본 하늘이 바다에 바위와 섬을 던져 바다가 솟아오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늘과 바다의 싸움은 길고 길었고, 그 싸움 끝에 수많은 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이트가 바라던 대로 땅이 생긴 것이다. 카이트는 새로 생긴 땅에 내려와 쉬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하늘과 바다의 싸움을 붙여 만든 새로 생긴 땅은 대나무가 많은 땅이었다. 카이트가 모처럼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대나무 줄기가 파도에 밀려와서 카이트의 발을 찔렀다. 화가 난 카이트는 부리로 대나무를 마구 쪼아댔고, 대나무는 반으로 쩍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대나무 마디 사이에서 필리핀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태어났다. 그들이 바로 말라카스(Malakas)와 마간다(Maganda)였다.
강하고 튼튼한 말라카스와 아름다운 마간다는 서로 사랑을 했고 곧 많은 자식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자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대나무 종족의 아이들은 게을렀고, 말라카스는 오은영 박사님과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이들 양육에 고심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아이들의 게으름에 잔뜩 화가 난 말라카스가 커다란 몽둥이를 찾아 휘두르며 아이들을 혼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노여움이 무서웠던 아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을 쳐서 몸을 숨겼다. 일부는 집안에, 일부는 밖으로, 일부는 바다로 도망쳤다. 그리고 이때 집 안의 방에 숨은 아이들의 후손은 추장이 되고, 부엌에 숨은 아이들의 후손은 노예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벽난로 안에 숨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벽난로 속 아이들의 후손은 벽난로 속 그을름 때문에 피부가 검게 변해 필리핀의 원주민인 아에따족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창세 신화(건국 신화): 말라카스와 마간다(Malakas at Mag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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