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필리핀 이해하기/필리핀 역사•정치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11조의 재산

by 필인러브 2020. 1. 2.
반응형



마르코스 정권에 투쟁하다가 귀국길에 암살당한 베니그노 아키노(니노이 아키노)는 비록 필리핀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못하였지만, 부인(코라손 아키노)과 아들(노이노이 아키노)은 모두 필리핀의 대통령이 되었다. 마닐라공항의 정식 이름이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NAIA. 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이고, 이 이름이 니노이 아키노가 1983년에 공항 터미널1의 11번 게이트 주변에서 암살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많겠지만, 필리핀의 전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나 그의 부인 이멜다의 이름만큼은 한국인에게도 퍽 친숙하다. 독재자로 유명했던 남의 나라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어서는 아니고,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금액의 재산을 불법 축재했기 때문이다. 이멜다의 사치 행각은 아시아 독재국가 사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마르코스와 이멜다 때문에 필리핀의 경제가 급속히 몰락하고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빈곤국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마르코스가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는 마르코스의 지지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 필리핀 법원에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일가가 집권 기간 사들인 미술품을 정부에 귀속하겠다는 판결을 내서 화제가 되었다. 필리핀 법원에서 마르코스 일가가 미술품들을 합법적으로 취득했다는 것을 입증할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니 반가운 이야기이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마르코스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들의 처분, 매매, 양도가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처분한 미술품으로 발생한 수익금까지 내놓아야 한다. 몰수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일가의 미술품은 약 160점에 이르는데, 그중에는 피카소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까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미술품을 정부에 귀속시킨다고 마르코스가 빼돌린 11조 원의 재산 전부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켈란젤로가 그린 명화가 탐욕스러운 개인의 주머니에 가는 것을 조금은 막게 된 셈이다.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의 보좌관이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1965년으로 당선 직후만 해도 정부 개혁이나 경제발전을 추구했다고 전해진다. 대통령 당선 직후만 해도 부정부패 척결을 외쳤던 마르코스였지만,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바닥으로 내몰았다. 민다나오섬의 무슬림을 탄압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금지했다. 이 시기 민영 방송사나 신문사 대부분이 사라졌고,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수만 명의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는데,  4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서 필리핀의 부채가 1962년보다 무려 80배 가까이 늘어났다.  마르코스는 1986년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으로 쫓겨날 때까지 무려 21년간에 걸쳐 필리핀을 장기 집권했는데, 대통령 집권 당시 받은 봉급은 30만4372달러(약 3억5천만 원) 정도이지만, 재임 기간 중 부정 축재하여 은닉한 재산이 무려 50억 달러 이상이라고 추정된다. 당시 국가외채 규모와 비슷한 규모의 엄청난 재산이었다. 마르코스가 하와이로 달아난 뒤 필리핀 정부에서 마르코스의 부정부패에 대해 조사하는 한편 바른정부위원회(PCGG. Presidential Commission on Good Government)라는 단체를 꾸려 마르코스의 부정재산 환수 작업을 했는데 마르코스 개인이 필리핀 재무부에서 빼돌린 돈만 최소 5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밝혀 큰 화제가 되었다. 현재 화폐 가치로 100억 달러(한화로 약 11조에 해당)가 넘는 돈이 개인에게 갔지만, 지금까지 필리핀 정부가 환수한 재산은 1,726억 페소(약 3조9천억 원)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긴, 이 재산을 모두 환수한다고 하여 국가 재정이 파탄 났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 관련 글 보기 :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③ 우리가 가진 적이 없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 니노이 아키노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3천 켤레의 구두로 기억되는 퍼스트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




[필리핀 일로코스 노르테] 마르코스 박물관(Marcos Museum)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E. Marcos)가 유년기를 보냈다는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의 집은 현재 마르코스 박물관(Marcos Museum)으로 사용 중이다. 마르코스가 유년기에 사용했던 의자와 책상, 침대 등 가구를 볼 수 있는데, 그가 1917년 9월 11일에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에도 참 호화롭게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박물관 2층에는 Pan-Philippine Highway 고속도로 건설과 OFW 해외노동자 파견 등 마르코스 대통령의 업적 관련 전시품도 전시되어 있다. 마르코스의 부정부패와 인원 억압에 대한 전시품은 물론 없다. 참고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89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 시신은 냉동시설에 보관되어 있다가 1993년 9월에서야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로 옮겨졌다. 시신을 옮기고 나서 한동안 방부 처리된 미라 형태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기도 했는데, 실제 시체는 다른 곳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 운영시간 : 오전 9시 ~ 오후 4시 / 매월 첫 화요일 휴관 

■ 전화번호 : 0917 772 6001

■ 입장료 : 성인 50페소 

 



■ 주소 : #10-N Lacub, Marcos Avenue, Batac, Luzon, Philippines

■ 위치 :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 바탁(Batac) 지역




  Marcos Museum and Mausoleum - Ferdinand Edralin Marcos Presidential Center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가 사용했었다던 침대. 그는 스물셋의 나이에 아버지의 고향인 일로코스 노르테(북일로코스)의 주지사를 했다. 아버지가 대통령을 지낼 때였으니 가능한 이야기였다. 




▲ 마르코스가 사용했었다는 서재 



▲ 산후아니코 대교(San Juanico Bridge). 타클로반에 있는 이 다리는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라고 한다. 마르코스 정권 때 일본의 원조로 건설되었다. 마르코스 지지자들이 아직도 목소리에 힘을 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마르코스 시절 이런 사회 기반 시설이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마닐라시청 옆에 있는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 (Manila Metropolitan Theater)의 옛 사진. 현재는 시설이 낙후되어 운영되지 않고 있다. 



▲ 마닐라공항의 옛 사진.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 모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어릴 적 사용했던 가구라고 한다. 이 부패한 정치인은 그 옛날에도 참 잘 먹고 잘살았는데, 가난한 필리핀 아저씨들이 "마르코스가 그렇게 죽다니 불쌍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11조의 재산 

- Copyright 2019.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all rights reserved 


※ 저작권에 관한 경고 : 필인러브(PHILINLOVE)의 콘텐츠(글. 사진, 동영상 등 모든 저작물과 창작물)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입니다. 필인러브의 콘텐츠를 개인 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올리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전 동의 없이 내용을 재편집하거나, 출처 없이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실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