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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민다나오섬

[마닐라 생활] 욕망이라는 이름의 스탠리 공구함

by 필인러브 2019.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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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대하여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정해진 무게 이상이 되면 추가 요금을 내는 저비용항공사에서 체크인을 하는 기분으로 가지고 있는 물건의 양을 조절한다. 그래서 먹거리처럼 쓰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면 모를까, 내가 보관 장소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격렬한 소비 욕구에 시달릴 때가 있다.

 

날씨는 더운데 어디라도 가고 싶어서 외출을 나섰다가 MRT 마갈라네스역(Magallanes Station) 옆에 있는 윌콘 데포 아이티허브(Wilcon Depot - IT HUB)에 주저앉고 말았다. 원래는 MRT를 타고 어딘가 가볼 생각이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바깥의 날씨에 비하여 윌콘의 에어컨은 너무 시원했고, 볼거리는 잔뜩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내 시선을 끈 것은 스탠리의 툴박스이었다. 공구라고는 드라이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제에 공구함을 가지고 싶어 한다니 묘한 일이지만, 디자인이 매우 예뻤다. 노란색과 검은색만을 사용하여 매끈하게 만들어진 철제 공구함은 유혹적이기까지 했다. 

 

나에게는 차고를 개조한 작업실에 묘한 열망이 있었다. 옷가게를 돌아보는 것보다 공구상가를 돌아보는 쪽을 훨씬 좋아할 정도이다. 언젠가 정착을 하게 되면 공구를 주렁주렁 매달 수 있는 책상을 하나 사보리라 마음을 먹었을 정도이다. 무척 아쉬운 것은 나의 그 열망을 뒷받침할 손재주가 없다는 점이었다. 재주가 없다면 꼼꼼함이나 끈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종류의 것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니, 내 손으로 무언가 작업을 해서 유형의 것을 만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공구함에 대해 소유욕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걸 사서 무엇에 쓰나 하는 마음과 하나 산다고 뭐가 나쁘냐는 마음이 다툼을 시작했다. 그리고 후자가 싸움에 이겼다. 내가 실로 오랜만에 무언가 가지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욕망이 무게가 상당히 무겁고, 가격이 3천 페소 가까이 된다는 식의 단점을 하찮은 단점으로 만들었다. 지루할 만큼 공구함 판매대 앞을 오래 서성이고 난 뒤, 가방을 뒤져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에 들어갔다. 돈이 모자라면 구매를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은 것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추 3천 페소가 되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공구함을 사고 나니 주머니 속에는 20페소 정도만이 남았을 뿐이다. 남은 돈으로 지프니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그제야 안에 무엇을 담아둘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윌콘 데포 아이티허브(Wilcon Depot - IT HUB)
이런 타일과 같은 인테리어 자재를 구매하고 싶다면 이곳에 가면 된다. 위층에서는 생활용품과 가구, 가전 등도 판매한다.
공구함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것은 바로 이 녀석이다. 실물이 훨씬 멋지다. 

 

[마닐라 생활] 욕망이라는 이름의 스탠리 공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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