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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정보/항공&공항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① 칼로오칸 공항과 필리핀항공(PAL)의 첫 노선 운항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는 바쁘지 않았던 해가 있었겠느냐만 1935년, 그해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80만이라는 우리의 농민이 일본 척무성(拓務省)의 결정에 따라 만주로 보내지는 등 식민지의 고통은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가 민족 말살을 위한 통치를 하던 그 억센 시련의 시기에도 손기정이 경성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14초로 비공인 세계신기록 수립했고, 소설가 심훈이 민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브나로드(v narod) 운동을 실천하던 농촌 운동가들의 삶을 '상록수'라는 제목의 소설로 그려 그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 당시 필리핀에서는 마누엘 루이스 케손(Manuel Luis Quezon y Molina)이 필리핀 자치령 연방 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필리핀 최초의 상업용 공항 

필리핀(Republic of the Philippines) 항공 교통의 역사에 있어서도 1935년은 매우 중요한 해였다. 필리핀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월등히 생활 수준이 높았던 때였다. 그런 필리핀에 처음으로 '상업용 공항(first commercial airfield)'이라는 것이 생겼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돈만 내면 비행기에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마닐라 위쪽으로 '칼로오칸(Caloocan)' 지역에 만들어졌던 이 공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스 파크 에어필드(Grace Park Airfield)'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특별히 전해지는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그레이스 파크 공항은 그 위치 때문에 'Manila North Airfield'라고도 불렸는데, 격납고와 활주로가 주요 시설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보면 공항의 활주로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힘든 단순한 시설이었지만, 당시 전쟁 중 기록을 보면 일본인들이 발린타왁 시장(Balintawak Market) 주변 EDSA 길도 활주로로 활용했다고 하는 기록도 볼 수 있으니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만든 활주로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특별한 장소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그레이스 파크 공항의 활주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오래된 활주로로써 그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1946년까지 비행장으로 사용되었다는 이 비행장은 전쟁 중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뒤 공항이 있던 지역 전체가 산업 지역으로 변한 탓에 지금은 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하이웨이 54와 하이웨이52 사이에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Rizal Avenue Extension 11번가 쪽에 공항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란 어렵다. 암튼, PATCO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그레이스 파크 에어필드에서 민간 상업용 항공기 운항을 시작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PATCO(Philippine Aerial Taxi Company)라는 회사가 바로 오늘날 필리핀항공(Philippine Airlines)의 전신이다. 


▲ Grace Park Airfield  (사진 원본 출처 : 미국 육군 항공대 USAAF)


필리핀항공은 왜 바기오 노선부터 상업 비행을 시작했을까? 

PATCO(Philippine Aerial Taxi Company)는 1940년 파산했지만, 1941년에 안드레스 소리아노(Andres Soriano)가 설립한 투자회사에서 PATCO를 인수하게 된다. 그는 19세기 후반에 필리핀으로 이주한 스페인인 아버지와 아얄라 기업의 핏줄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필리핀인이었는데, 20대 초반에 산미구엘(San Miguel Brewery)에 근무할 때부터 탁월한 비즈니스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소리아노는 불과 33의 나이에 산미구엘에서 회장(president)자리까지 올랐는데 코카콜라며 로얄(Roya) 음료수의 생산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아노는 1930년대 이후 산미구엘을 나와 ANSCOR(A. Soriano Corporation)라는 투자회사를 차린 뒤 천연자원 개발에 집중하게 되는데, 광산업에서부터 신문(The Philippines Herald), 방송업 등에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부유한 산업가로서 활동했다. 무척이나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사업을 하여서 1964년 사망 당시 뉴욕타임스로부터 필리핀의 산업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 인물이 만든 기업 중 하나가 바로 필리핀항공이다. 안드레스 소리아노는 1941년 2월 26일에 필리핀항공(Philippine Airlines)이란 이름으로 정식으로 항공사를 설립하였고, 그해 필리핀 최초로 국내선 노선을 띄우는 데 성공한다. 드디어 상업용 비행기가 뜨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하인켈사(HEINKEl Flugzeugwerke)가 터보제트엔진 1기를 장착한 제트추진 항공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으로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하늘을 날고자 하는 사람들로 세계가 들썩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필리핀항공에서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상업 비행 노선의 운항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마닐라에서부터 바기오(Baguio)까지 운항하는 왕복 노선이었다. 루손섬 북쪽에서 일하던 금광 노동자들과 바기오로 여행을 하려는 관광객을 주요 고객층으로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필리핀항공에서는 꽤 적극적으로 바기오 노선의 항공기 운항을 홍보하였고 마침 내 1941년 3월 15일, 5명의 승객을 태우는 데 성공한다. 200명 이상 탑승할 수 있는 항공기도 보기 쉬운 요즘에야 다섯 명이란 승객수가 매우 작게 느껴지지만, 이 비행은 필리핀 항공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비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에서 시작된 최초의 상업 비행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미국 비치크래프트 사(Beech Aircraft Corporation)에서 생산한 'Beechcraft Model 18' 비행기가 130mph의 속도로 순항했으며, 바기오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비행은 추후 필리핀항공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업 비행을 시작한 항공사"임을 이야기할 때 주요 근거가 되게 된다. 당시 필리핀항공에서 미 해군과 해병대가 사용하는 비행기와 같은 기종으로 미국에서 제작된 항공기를 세 대나 수입한 뒤 미국인 조종사를 고용했는데, 쌍발 엔진 비행기는 9인승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우 튼튼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참, 흥미로운 것은 비행기 항공료이다. 당시 PATCO에서 홍보용으로 배포했던 마케팅 자료를 보면 당시 마닐라에서 바기오 공항(Loakan Airfield)까지 항공료 가격은 편도 25페소(왕복 45페소)였다. 그 시절 근로자의 최저 임금이 하루 4페소 수준이었으며, 대중교통 요금이 10센타보 (0.1페소)였음을 고려해보면 25페소가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 1930년대 중반, 필리핀 마닐라 시내 거리 풍경 (출처 :  Filipinas Heritage Library ) 



 메트로 마닐라 칼로오칸(City of Caloocan)



▲ Grace Park Airfield  (사진 출처 : Pacific Wrecks )



▲ PATCO에서 바기오 노선에 대한 홍보용으로 제작했던 마케팅 브로슈어 안내서. 고객이 요청하면 전세 항공편 형태로 노선을 만들어 서비스 했다.  (사진 출처 :  http://bobblume.com/ )



▲ 마닐라에서부터 바기오 노선 이용에 대한 안내문. 어린이 요금 안내 및 수하물 안내까지 매우 상세하게 제작되어 있음이 눈에 띈다.  


1935년 9월 17일 선거에서 마누엘 루이스 케손(Manuel Luis Quezon y Molina)은 미국의 보호 아래 수립된 필리핀 자치령 연방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케손은 필리핀이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던 인물이었지만, 그의 단정한 모습만큼이나 공정한 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타갈로그어를 국가 언어(국어)로 선언한 것도 퀘손의 업적 중 하나인데, 필리핀 정치역사에 이어 그 누구보다도 국민을 공정하게 대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때였지만, 케손 시티(Quezon City)를 수도로 만든 것도 그의 선택이었다. 퀘손 대통령은 1942년 미국으로 망명하였지만 1944년도에 결핵으로 사망하였는데, 필리핀 정부에서는 그의 정치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49년 루손섬의 동쪽에 있던 타야바스 주의 이름을 퀘존 주(Province of Quezon)로 바뀌기도 한다.  참고로 Quezon는 퀘존 또는 퀘손이라고 표기하는데,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용례'에 따르면 케손으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발음은 "퀘존"에 가깝다. 마누엘 루이스 케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PML)에서 만든 위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된다.  


위의 내용은 아래 자료 및 사진을 참고로 작성되었으며, 첨부된 사진의 출처는 표기된 바와 같습니다. 

· 뉴욕타임즈 아카이브(archive)

https://www.nytimes.com/1964/12/31/archives/andres-soriano-industrialist-66-philippine-war-hero-is-deadbuilt.html

· 필리핀항공 연혁 (PAL History and Milestones)

https://www.philippineairlines.com/AboutUs/HistoryAndMilestone

· How much were cars in PH back in the day?

https://www.topgear.com.ph/features/feature-articles/Philippine-cars-cost-history-a52-20180209






[필리핀 항공 역사] 마닐라공항 이야기 - ① 칼로오칸 공항과 필리핀항공(PAL)의 첫 노선 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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