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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병뚜껑 악기와 메리 크리스마스

by 필인러브 2019.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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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월 1일이 되면 나는 유튜브를 열어 1990년에 발표되었다는 오래된 노래를 듣는다. 호세 마리 찬(Jose Mari Chan)이 부른 "Christmas in Our Hearts"와  "A Perfect Christmas"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검색까지 해서 듣는 이유는 간단하다. 필리핀 신문에서 크리스마스 때문에 연말 교통 체증이 시작된 것 같다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어 대는 것을 보기 전에 호세 마리 찬의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크리스마스 기분을 시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9월이 되었고, 필리핀 스타(Philippine Star)와 같은 신문에까지 "크리스마스 카운트 다운이 공식적으로 시작됩니다. (The countdown to Christmas officially begins. Welcome, 'ber months! )"라는 글이 부지런히 올라왔다. 귀가 큼지막하고 잘생긴 호세 마리 찬 아저씨의 웃는 얼굴도 신문 기사에 빠지지 않았는데, 필리핀에서 이 아저씨를 빼놓고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일흔 중반의 나이지만, 십 년 전의 얼굴이나 지금의 얼굴이나 거의 변함이 없는 호세 마리 찬은 필리핀 일로일로가 고향으로 화교 출신의 사업가이자 가수인데, 필리핀에서 "크리스마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호세 마리 찬의 인기란 얼마나 대단한지 해마다 9월부터 12월까지 자그마치 넉 달 동안은 필리핀 곳곳에서 호세 마리 찬의 노래가 하염없이 흘러나올 정도이다. 정확하게 집계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호세 마리 찬이 부른 크리스마스 앨범이 필리핀에서 가장 긴 재생 시간을 지닌 앨범이라는 소리도 있다.


12월 25일을 전후하여 며칠 반짝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마는 한국에 살던 나로서는 좀 성급하게 들리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이름이 'ber'로 끝나는 달이 되면 이미 크리스마스가 시작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끼는 이런 사람들의 주장은 9월(September)부터 10월(October), 11월(November) 그리고 12월(December)까지 그 이름이 'ber'로 끝나는 기간이 전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것인데, 내 주변만 봐도 이 주장에 동의하는 이가 상당수이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는 영국에서 온 행운의 편지만큼이나 시작점이 모호하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 좀 일찍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하는 식의 마음을 다들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9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을 놓고 흔히 게으르다고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준비에서만큼은 예외인지 9월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다가 모으는 사람도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고는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오롯이 바꾸기란 불가능한 법이고, 필리핀 사람은 역시 필리핀 사람이라고 할까. 예전처럼 집 안팎에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어두지 않는다고 해도 캐럴 듣기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판매하는 곳이 거리 곳곳에 생기고, 쇼핑몰에서는 크리스마스 세일을 하기도 한다.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겨운 사람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휩쓸려서 쌀 대신 장식품을 사는 일이 생기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나 따위의 이해가 필요한 일이 아님은 알고 있다. 내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살 돈을 주는 것이 아닌 이상 남의 일에 참견할 자격이란 없으니 말이다. 




▲  필리핀 팔라완. 산빈센테 포트 바톤(Port Barton). Ausan Beach Front Cottages. 



필리핀에는 천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장소가 몇 곳 있다. 푸에르토 프린세사와 엘니도 사이에 있는 포토 바톤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 포토 바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 동네 꼬마 아이들이 병뚜껑 악기와 깡통 북을 이용하여 호세 마리 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흥겹지만, 공연은 공짜가 아니므로 계속 들으면 곤란하다. 20페소는 큰돈이 아니지만, 동네 아이들이 하염없이 몰려오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 캐롤링(Carolling) 

캐럴(carol)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되었던 헬라어 코라울리엔(choraulien)에서 찾을 수 있다. 둥글게 둘러서서 피리 연주에 맞춰 춤추고 노래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캐럴이 교회에서 불리게 된 것은 5세기부터라고 한다. 1521년 영국에서 최초의 캐럴집이 발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자취를 감추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19세기부터 다시 불리기 시작했는데, 영국에서는 아이들이 집집이 돌아다니며 창문 밑에서 캐럴을 부르고 사탕이나 과자를 얻어먹거나 용돈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캐럴은 '저 들 밖에 한밤중에'라고 전해진다. 


필리핀에서 캐롤링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캐럴을 부르고 용돈이나 간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더 즐겁게  부르기 위해 병뚜껑이나 캔으로 만든 악기가 동원되기도 한다. 필리핀의 크리스마스 전통 중 하나이다.



▲ 이런 캐럴 용돈 벌이는 항공권 프로모션과 같다. 뒤늦게 오면 잔돈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야 한다.  



▲ 몰 오브 아시아의 크리스마스 장식. 어제 몰 오브 아시아에 가서 살펴봤는데, 올해는 아직 장식이 설치되지 않았다.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병뚜껑 악기와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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