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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구석구석/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근교 여행]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 불라칸 김대건 성인 성지(Bulacan’s Korean Temple)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안에 그려진 것은 머리에 갓을 쓴 조선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기도하는 듯 두 손은 가지런하게 모여 있다. 필리핀에 있는 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에 조선 사람이 그려진 것이 신기하여 넋을 잃고 보다가 비가 후두둑 떨어지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그만 떠나려는데 성당 앞마당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뭔가 이야기를 해오셨다. 타갈로그어라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눈치가 아무도 없는데 왜 빈 성당 안에 들어가 있느냐는 것인가 싶다. 성당을 구경 온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반가워해 주시면서 "안드류 킴(Andrew Kim)"을 보러 왔느냐고 물으신다. 필리핀 사람들이 알파벳 에이(A)를 '아'로 발음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주머니의 안드류 발음은 유독 또렷했다.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나를 반가워해 주셨지만, 이내 딱하다는 얼굴을 해왔다. 이곳 성당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이고 근처에 있는 롤롬보이 본당(Bulacan’s Korean Temple)에 가면 볼거리가 아주 많은데 오늘은 구경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리가 멀지 않으니 그냥 걸어가거나 10페소를 내고 트라이시클을 타면 되지만, 가봐도 지금은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렇지 않아도 본당 앞까지 갔다가 꽉 잠긴 대문만 보고 온 터라 어찌 된 일인지 여쭈었더니 간밤에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주변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겨서 그렇단다.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신부님도 오늘 아침 미사만 보고 댁으로 들어갔다면서 물이 빠질 때까지 당분간 방문객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동네가 저지대인 데다가 배수 시설이 좋지 못하니 비만 내리면 집이 침수되는 모양이었다. 허벅지까지 동네가 물에 잠기면 동네 사람들이 성당을 대피소로 쓰기도 한다는데, 이번에는 성당까지 침수되었다니 안타깝기도 하다. 아무튼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게 안드류 김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어오셔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재밌는 일화가 많은데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설명이 어렵다고 아쉬워하셨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책을 찾아 읽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동네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나는 김대건 신부님이 대체 어떤 일화를 가졌는지 공부를 한 뒤, 비가 오지 않을 때 성당에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 아래는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잠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가톨릭 사전과 평화 신문 등에 올라온 내용을 주로 참고했지만, 기록이 조금씩 달라서 내용 중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선 후기에 실학자 이중환이 만든 지리서를 보면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는 설명을 곁들인 동네가 있다. 요즘으로 보면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일대인데,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예전에는 '솔뫼'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는 솔뫼에서 1821년에 태어난 아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조선 최초의 신부라는 김대건 신부님이시다. 1784년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은 대대로 천주교를 믿어왔는데, 증조부(김진후)가 1814년 순교한 뒤로 종조부(김한현)와 부친(김제준) 그리고 김대건 신부까지 모두 순교하였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 집안이었다. 증조부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한 뒤 솔뫼를 떠나 경기도 용인시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를 하지만, 솔뫼는 천주교회 성장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며,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평가된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야 할 길은 확실했다. 김대건 신부는 용인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받은 뒤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귀국 후 조선으로 돌아와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1년 정도 사목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학식이 워낙 출중하여 영국에서 만든 라틴어 세계지도를 우리말로 옮겨다가 세계 지리책을 만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영의정 권돈인이 김대건이 신학 공부와 사목을 핑계로 외국인과 접촉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선에서 금지하던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목을 벤 뒤 군문(軍門)에 메다는 군문효수형이었다. 1846년 9월 16일 군문효수형이 집행되었고, 김대건 신부님은 순교했다. 고작 스물여섯의 나이였다.  




# Saint Andrew Kim Tae-gon 



그런데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라는 김대건 신부님의 성지가 어떻게 필리핀, 그것도 마닐라가 아닌 불라칸에 있는 것일까?


김대건 신부님이 마닐라에 온 것은 1839년도의 일이었다. 1837년, 열일곱의 나이로 신학 공부를 위해 용인에서 마카오까지 9,000리(약 3,500㎞)의 길을 걸어갔지만, 아편 수입과 판매 금지 문제로 인해 나라가 들썩이고 있었으니 편안히 자리에 앉아 신학을 공부하기에는 좋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포르투갈 식민정치에 불만을 품은 청국인들이 민란을 일으켜서 정치 불안이 심해졌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때,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본부에서 칼르리 신부와 데플레슈 신부를 비롯해 신학생 몇 명을 필리핀으로 피신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839년 4월 6일 마카오에서 출발한 스페인 배를 이용했는데, 필리핀 마닐라까지 2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마닐라의 대주교가 사목 방문을 위해 출타 중이었으니, 낯선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그들을 받아 주었고,  1839년 5월 3일 불라칸 주(Bulacan Province)의 보카우에 롤롬보이(Lolomboy)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의 농장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하게 된다. 불라칸에서 1년 남짓 머물다가 다시 마카오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제들과 수사들은 매우 친절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몇 년 뒤 대만가는 길에 다시 들려 열흘 정도 머물다 갔었다니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평화롭지 않았을까 짐작이 해보기도 한다. 


김대건 신부님 성인 품위에 오른 것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이다. 그리고 2년 뒤, 1986년 5월 22일 김대건 신부님이 머물던 불라칸의 성당이 김대건 성인 성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 오기선 신부의 지도하에 마닐라 한인 천주교회 신자들과 한국의 신자들이 뜻을 모아 김대건 성인상 동상을 세우고 성지로 선포한 것이다. 당시 동상 축복식엔 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롤로스 교구장 알마리오 주교 등이 참석했다고 하며, 이후 롤롬보이 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주보 성인으로 모시게 됐다. 그러다가 성당 규모가 커진 것은 2002년 즈음 한국 교회에서 부지 매입을 하면서이다. 원래 이곳 성당 부지는 멘도사(Mendosa) 집안의 땅이었는데, 2000년도에 멘도사 집안에서 땅을 팔려고 내놓은 것을 한국 교회에서 매입하여 필리핀 정부와 현지 교구청 인가를 받아 성당을 세우고 필리핀 김대건 성인 성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는 성지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수원교구 소속 성 안드레아 수녀회에서 성지를 관리하면서 예수성심상, 김대건 성인 유골이 모셔진 봉헌소, 성모당, 7궁방(7층탑)을 차례로 건립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필리핀으로 성지순례 온 신자들을 위해 순례 투어 프로그램 및 피정의 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망향의 망고나무


롤롬보이(Lolomboy)에 방치되어 있던 터를 다듬어 성지로 만들고, 동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생긴 신기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부터 자정만 되면 개들이 시끄럽게 짖기 시작했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개 짖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밤 벌어지는 이 소동에 동네 사람들이 이사를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동네 유지였던 멘도사 가문의 식모가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문 바깥으로 확인하러 나갔다가 목 없는 유령을 보고 기절하여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식모는 재빨리 그 집을 도망쳐 나왔고, 온 동네에 목 없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밤이면 목 없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네는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폐허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도착한 날부터 개 짖는 소리가 사라졌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목 없는 귀신의 소문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김대건 신부가 목이 잘려 순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인의 영혼이 나타났었다고 믿기 시작했다. 


본당의 김대건 성인 동상 뒤편에 있는 커다란 망고나무에 대한 일화도 있다. '망향의 망고나무'라는 이름의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좀 더 슬프다. 어린 아들을 멀리 타국으로 보내놓고 걱정하지 않을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고향에서 아버지가 인편으로 보낸 편지가 중국을 거쳐 필리핀까지 온 것은 무려 사 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 반가운 편지를 받고 망고나무 옆에 서서 집안 모두 무사하다는 글을 읽은 김대건 신부는 반가움과 그리움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아버지가 천주교 박해로 옥고를 치르고 있던 때였다고 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주인을 찾아간 편지는 아버지가 이역만리 떨어진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필리핀 불라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김대건 성인 성지) 


■ 주소 :  Project Pangarap, Lolomboy, Bocaue, 3018 Bulacan Province, Philippines

■ 위치 : 필리핀 불라칸 주(Bulacan Province). 보카우에 롤롬보이 

■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 

1. 마닐라에서 Balagtas(Bulacan)로 가는 버스 탑승 후 Bocaue Exit Tollgate 에 하차. Marilao로 가는 지프니로 갈아탄 뒤 Joners Supermart또는 맥도날드 롤롬보이( Mcdonalds, Lolomboy )에 하차. 

2. SM North EDSA에서 SM Marilao 가는 밴 탑승. SM Marilao에서 지프니로 갈아탄 뒤 Joners Minimart 또는 맥도날드 롤롬보이( Mcdonalds, Lolomboy )에 하차. 




■ 비고 

- 필리핀 김대건 성인 성지는 롤롬보이 본당(기존 성당)과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 (새로 지은 성당)  두 곳으로 장소가 나뉜다. 

① 롤롬보이 본당  : Bulacan’s Korean Temple(Shrine of Saint Andrew Kim)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 : The Parish of Sto. Cristo and St. Andrew Kim Tae-gon New Church

- 구글이나 웨이즈에서 검색하려면 'Bulacan’s Korean Temple' 로 검색하면 된다. 

- 주차는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있는 새로 지은 성당 쪽에 해야 한다. 골목 끝에 있는 본당 쪽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 본당 정문 앞 길이 매우 좁은 골목길이라서 차를 돌리기도 어려우니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성당에 가기 전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필리핀에서 가본 맥도날드 중 가장 손님이 없는 맥도날드였다.  



▲ 가만히 보니 맥도날드 바로 앞에 졸리비와 망이나살이 보였다. 맥도날드에 손님이 뜸할 수 밖에 없다. 



▲ 성당 입구 



▲ 주차비가 적혀 있지만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차를 가지고 간다면 이곳 성당 주차장 또는 맥도날드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한다. (본당에는 주차 공간이 없음)  





▲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나이에 필리핀에 왔을 터인데 싶은 생각이 들어 뭔가 어색하지만, 필리핀 사람들 생각에는 김대건 신부님이 이렇게 생겼나 보다. 




▲ 간단한 안내문이 있지만, 타갈로그어로 적혀 있다. 듣기로는 본당 쪽에 가면 한글로도 적혀 있다고 한다.  



▲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The Parish of Sto. Cristo and St. Andrew Kim Tae-gon New Church)






▲ 성당 내부 



▲ 성당 왼쪽으로는 배 모형도 있다. 






 [필리핀 마닐라 근교 여행]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 불라칸 김대건 성인 성지(Bulacan’s Korean Temple)

   - 2019년 6월, 필리핀 마닐라, written by Sali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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