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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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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바탕가스 여행] 빈토르와 여섯 마리의 새끼돼지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있었지만, 물이라고는 한줄기도 보기 힘든 척박한 야산이었다. 3월의 뜨거운 바람이 산자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직 점심때도 되지 않았건만, 더위조차 나무 그늘로 숨어들고 있었다. 되도록 그늘로 걸었지만 이내 온몸에 땀이 흘렀다. 그래도 예전보다 길이 좀 더 길답게 되어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의 발자국이 만든 길은 좁아도 단단했다. 게다가 산꼭대기에 사는 누군가 이 산자락 틈으로 수도관을 연결해 놓고 있었다. 값싼 재질의 푸른색 수도관이 내게 훌륭한 길 안내자가 되었다. 몇 번이나 발걸음한 산길이라 해도 내 기억력이란 신통하지 못했다. 갈림길에서 잠깐 방향을 잃었지만, 수도관을 따라가면 되었다. 길을 안다고 해도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걷기는 확실히 더운 날이었다. 발가락..
[필리핀 마닐라] 말라떼 다이아몬드 호텔에서 엔사이마다를 온라인 주문받는 세상 마닐라에 있는 고급호텔 대부분을 후줄근한 모습으로 자전거를 질질 끌고 돌아다녀 봐서 하는 이야기지만, 말라떼에 있는 다이아몬드 호텔(Diamond Hotel)만큼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호텔도 드물다. 레스토랑 직원들도 그렇지만, 주차장 가드 아저씨들은 정말 보기 드물게 친절하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가서 자전거를 어디 세우면 좋으냐고 물어봐도 당황하지 않고 매우 침착한 모습으로 안내해주는데, 자전거를 세우기 좋은 장소까지 직접 데려다주고 안전장치를 해두었는지 세심하게 물어봐 주기도 한다.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내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나와서 시원할 것이라는 귀한 정보까지 주는 것이 고마워서 음료수를 한 병씩 사다 주었더니, 세상 행복한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기도 한다. 퉁명..
[필리핀 마닐라] 파식 시장 비코 소토와 오토바이 트라이시클(Tricycle) 위기는 기회라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탁월한 정치 수완을 보여주는 기회로 만든 사람은 바로 파식(Pasig) 의 시장 비코 소토(Vico Sotto)이다. 필리핀의 유명 코미디언 빅 소토(Vic Sotto)와 배우 코니 레예스(Coney Reyes) 사이에서 태어난 비코 소토는 파식(파시그)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시장(mayor)에 출마하여 메트로 마닐라 지역 내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터라 비로 소토의 정치 성과에 대해 평가를 하기란 어렵지만, 비코 소토가 다른 어떤 시장보다 서민들 편에 서서 소통하는 정치를 보여주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파식(파시그)로 이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농담..
[필리핀 민다나오] 레즈비언 무슬림 레이가 사는 세상 "납치범들에게 돈을 주고 마닐라로 돌아왔는데, 한 달 뒤에 A를 감시했던 청년에게서 연락이 왔었대. 근데 그 이유가 뭔 줄 알아?""왜요?""핸드폰 로드가 없다고 좀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잖아?" 친구 A가 민다나오를 방문하여 괴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했다가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띠따는 웃고 있었다. 마약이니 납치니 하는 것을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나로서는 친구의 납치 이야기가 이렇게 유쾌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띠따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인 데다가 납치를 당했어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히 풀려났으니 그 후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을 가득 머금고 띠따가 강조한 것은 띠따의 친구 A가 보통 사람과 좀 다른 특별한 사람이..
[필리핀 마닐라 생활] 루프물 영화의 거북이 형 어제와 비슷한, 아니, 지난주 또는 지난달과 비슷한 아침이었다. 요즘 나의 아침은 이불을 개키고, 형(거북이 이름)의 물을 갈아주면서 시작된다. 오후가 되면 너무나 더워서 형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곤혹스럽게 여겨지곤 했으니 손가락도 움직이기 귀찮은 마음이 들기 전에 청소며 빨래를 말끔히 해두어야만 했다. 코로나19와 더운 날씨가 합세하여 나를 매우 규칙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똑같으니 흡사 '사랑의 블랙홀'과 같은 루프물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지만, 재미없는 영화도 끝은 있는 법이라고 적당히 생각하기로 했다. 며칠 분량의 영화인지 확인은 어렵지만, 요즘 내가 찍고 있는 이 지루한 영화에도 엔딩 크레딧이 있을 터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불평분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투덜대기 쉬운 상황..
[필리핀 마닐라 생활] 코로나19 시대, 나만의 특별한 배달원 "토요일에는 시장에 가보고 에스파다(갈치)를 사다 줄게!"일전에 사 온 바나나는 너무 작아서 세 개씩 먹어야 했다고 알려주고 커다란 바나나를 사달라고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요즘과 같은 때에 시장에 큰 바나나가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완딩 씨가 내게 내민 것은 정말 커다란 바나나였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크고 싱싱한 바나나를 어디서 구했을까, 바나나 꾸러미를 내미는 왕완딩 씨의 얼굴에는 성공적으로 바나나를 사 온 안겨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비싸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기가 바나나값을 올린 것도 아니건만, 바나나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지만 왕완딩 씨가 시장의 과일 좌판을 모두 돌아보고 품질이며 가격을 꼼꼼하게 비교했음..
[필리핀 민다나오] 이슬람 반군 - 모로민족해방전선과 아부 사야프 그룹 민나다오의 이슬람교계 분리독립무장집단(이슬람 반군단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면,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이슬람 세력의 분리독립을 주도한 단체가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모로민족해방전선(MNLF) 안에서 생겨난 내부갈등은 민다나오의 모로족을 여러 개의 분파 조직으로 나누어지게 했다. 내분으로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아부사야프그룹(ASG), 마우테 그룹(Maute Group), 방사모로이슬람자유운동(BIFM), 방사모로이슬람자유전사단(BIFF) 등등 여러 반군 분파들이 생겨났으니, 과연 누가 이슬람 분리독립의 주도권을 잡게 되느냐가 문제가 되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활동했던, 혹은 활동 중인 무슬림 단체(이슬람 정치조직)는 아래와 같다..
[필리핀 민다나오] 두테르테 대통령과 방사모로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BARMM) 1990년,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에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ARMM)가 공식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ARMM의 출범이 민다나오 지역에 평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무슬림 전체가 합의하지 못한 채 만들어진 자치구였다. ARMM 자치구 운영은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에서 주도했는데, 이 모로민족해방전선은 타우숙족(Tau Sug)의 원주민이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형편이었다. 마긴다나오족(Maguindanao) 중심의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에서 ARMM의 운영을 반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ARMM) 지도층의 운영 미숙과 부정부패도 큰 문제였다. 게다가 아부 사야프 그룹(ASG)과 마우테 그룹(Maute Group)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의 활동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
[필리핀 생활] 왜 필리핀 무슬림은 4월 24일부터 이슬람 라마단 기간을 시작할까 오늘 필리핀의 라마단 기간이 시작되었다. 라마단(Ramadan)은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한다. 그리고 이 더운 달에 무슬림들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지는 순간까지 금식하고, 날마다 5번의 기도를 드린다. 흡연이나 성관계, 음주 등도 자제해야 한다. 아주 엄격하게 라마단 기간을 보내는 곳에서는 물조차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4~5월 사이가 가장 더운 시기인지라 물을 마시는 것까지 금지하지는 않는 듯하다. 오늘만 해도 민다나오섬에 있는 코타바토 시(Cotabato City)의 체감온도가 44도에 달했다고 하는 형편인데, 5월이 되면 점점 더 더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아무리 라마단 기간이라고 해도 물 마시는 것까지 금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이지만 인구의 6%는 이슬람..
[필리핀 민다나오] 평화로의 첫걸음,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ARMM) 필리핀에서도 어느 지역이 가장 빈곤한지 알고 싶다면 필리핀 통계청(PSA)에서 3년마다 진행하는 빈곤 발생률 조사(FIES)를 보면 된다. 이 조사를 보면 가족의 수입과 지출 현황을 지역별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지역이 가장 가난한지 보기 위해 굳이 2018년에 나온 최신 통계 자료를 볼 필요는 없다. 어느 조사 시기의 자료를 봐도 가장 빈곤한 지역은 민다나오의 이슬람 자치 구역으로 나타난다. 메트로 마닐라 지역과 비교하여 수입이 삼 분의 일 정도인데, 상당수가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극도의 빈곤 상태라고 보고된다. 이슬람 자치구 다음으로는 동부 비사야 지방과 잠보앙가 반도, 비콜, 소크사르젠, 카라가, 북부 민다나오 지방 순으로 빈곤하다고 나타나는데, 민다나오의 6개 지방(Region)는 다바오..
[필리핀 민다나오] 가톨릭 국가에 사는 606만 명의 무슬림 민다나오에 있는 도시들의 이름이 매우 낯설게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민다나오 지역은 볼거리가 풍부하고 열대과일도 매우 가격이 싸지만, 다바오(Davao City)와 카가얀데오로(Cagayan de Oro)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외교부의 여행 금지 구역이기 때문에 여행이 불가능하다. 특히 잠보앙가와 술루 군도, 바실란섬, 타위타위 군도 쪽은 외교부의 허가 없이 여행을 다니면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외교부에서 민다나오 쪽에 대해 여행을 금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슬람 반군 문제로 치안이 불안하여 외국인 납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력의 분리독립 요구로 인한 오랜 내전은 민다나오를 필리핀 현지인들조차 방문을 꺼리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민다나오에 사는 한국..
[필리핀 민다나오] 하리본 독수리와 호수가 많은 땅의 모로족(Moro people) 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산은 어디일까? 정답은 민다나오 섬에 있는 아포산(Mountain Apo)이다. '모든 산의 아버지'라는 애칭을 가진 아포산은 해발 고도 2,954m를 자랑하는 활화산이다. 원래 4,000m도 넘는 높은 산이었지만 화산 폭발로 키가 작아졌다나. 그래도 여전히 필리핀 최고봉이며, 말레이시아 사바주에 있는 키나발루산(4,101m)에 이어 남아시아에서 둘째로 높은 산이다. 그런데 백두산 장군봉(2,750m)보다도 높은 이 산에 원주민들만 사는 것은 아니다. 아포산은 필리핀 독수리(Philippine Eagle)의 주요 서식지이다. 하리본(Haribon)이라고 불리는 이 독수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독수리'로 알려진 독수리로 몸길이가 1m 이상 된다는 아주 커다란 독수리이다. 민다나오 섬에..
[필리핀 마닐라 생활] 커다란 소시지 대신 녀석이 고른 것 "케첩이 문 옆에 떨어졌어!""괜찮아요. 난 케첩 안 좋아해요!" 상당히 주관이 뚜렷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주관이 뚜렷한 녀석에게 타깃이 되면 도무지 헤어날 방법이 없다. 편의점에는 손님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녀석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동전을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해봤지만, 아침부터 굶어서 배가 고프다나 어쨌다나.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 벼르고 벼르다 편의점에 나온 것인데 이래서야 물건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나는 아이에게 지금 동전이 하나도 없으니 일단 저쪽으로 좀 가 있으라고 이야기한 뒤에야 맥주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럭저럭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면서 편의점 직원에게 소시지와 밥을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소시지는 꼬마 녀석에게 주면 된다고 했더..
[필리핀 종교] 진짜 채찍과 진짜 못, 부활절 예수 십자가 처형 재연행사 어떤 종교를 믿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종교가 무엇인가 확인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가톨릭(천주교)이다. 신자가 무려 8,030만 명(79.5%)에 달한다. 통계 조사 당시 필리핀 인구는 약 1억 97만 명 정도였으니, 열에 여덟은 가톨릭을 믿는 셈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두 번째로 많이 믿는 종교는 개신교라고 하는데, 대략 9%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는 그 종파가 매우 복잡하다.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약 266만 명), 복음주의교회협의회(약 244만 명), 비로마카톨릭(114만 명),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79만 명), 아글리파이..
[필리핀 마닐라 생활] 뚜레쥬르 빵집의 돌덩이 바게트 한때는 삼시 세끼 빵만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 입맛이란 바뀌기 마련이다. 소맷자락 가득 흰색 밀가루를 휘날리며 베이킹을 배웠을 정도로 빵을 퍽 좋아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빵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너무 많은 빵을 사서 그런 것인지 혹은 둘 다 원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장보기에 있어 빵집 방문이 생략된 지 오래다. 타루칸 마을에 갈 때마다 동네 빵집 진열대에 놓인 빵을 죄다 사는 것은 삶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만, 많이 사기만 할 뿐 내가 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으면서 마음이 좀 바뀌었다. 마우스를 들고 끄적끄적 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소일하는지라 먹는 것 외에는 딱히 즐거울..
[필리핀 마닐라 생활] 꽈리고추와 멸치 나는 이색 퓨전 요리도 잘 먹는 편이지만, 내가 요리할 때만큼은 절대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내 손가락을 거쳐서 그럴싸한 퓨전 음식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요리학원에서 배웠던 것을 벗어나 색다른 재료를 넣어볼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라면을 끓여도 포장지 조리예시에 적힌 것을 정확히 따르려고 노력하는 내게 꽈리고추 한 봉지는 꽤 버거운 존재였다. 제주상회의 배달하는 꾸야가 덤이라면서 건네준 비닐봉지에는 녹색의 꽈리고추가 가득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시장 가기가 어려워진 요즘과 같은 시기에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봉지를 펼치니 풀 냄새 비슷한 향긋한 냄새가 가득 느껴진다. 하지만 대체 이 쭈글쭈글한 풋고추를 어떻게 먹어야만 한단 말인가..
[필리핀 마닐라 생활] 뎅기열과 코로나19 반은 강제적으로 또 반은 자발적으로 자가 격리를 한 지 14일째. 메트로 마닐라에 봉쇄 조치가 내려지기 전부터 두문불출하였으니 실제적으로는 좀 더 오래되었겠지만, 언제부터 외출을 못 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계산해봤자 마음만 뒤숭숭해질 뿐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유머와 긍정성이라고 했으니, 힘든 시간이 절반은 지났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뎅기열에 걸려서 무척이나 고생한 적이 있다. 뎅기열은 모기를 매개로 하여 걸리는데, 이 병이 나면 고열과 함께 근육통이나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몸살감기 비슷한 증상을 보여서 초반에는 감기에 걸렸다는 착각을 하게 하지만, 온몸에 열이 나고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감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온몸에 통증을 심하게 느끼게..
[필리핀 마닐라 생활] PNB 은행과 투명비닐 칸막이 필리핀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쪽이 하나도 늘지 않는 것보다 안심이 된다. 정말 확진자가 없다면 필리핀 정부에서 루손섬 봉쇄라는 강경책을 썼을 리가 없는데, 확진자 수가 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필리핀 보건부에서 테스트 키트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환자가 누군지 밝혀져야 치료를 하든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든 할 수 있다. 검사를 더 많이 하고, 더 많은 확진자 수를 기록하고, 빨리 이 무서운 바이러스를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리고 이 지루한 과정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최대한 바깥출입을 삼가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힘쓰는 것, 그 정도..
[필리핀 마닐라 생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더 빛나는 필리핀 사람들의 창의력 필리핀 사람들이 아이큐는 얼마나 될까? 아이큐 검사에서 높은 숫자를 기록한다고 하여 인생을 똑똑하게 산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아이큐 테스트가 큰 의미는 없다는 사람도 많지만, 모든 이가 아이큐 검사를 무의미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국가별 아이큐 순위(AAverage IQ by Country by Population)를 조사하는 사람도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World Population Review 사이트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아이큐는 105로 싱가폴(108)과 홍콩(108)에 이어 3위이다. 필리핀의 평균 아이큐는 86으로 85위 정도에 머문다. 이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필리핀 사람들의 평균 아이큐는 대략 90 이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굳이 아이큐 검사 기관..
[필리핀 마닐라 생활] 건기의 시작과 매니 파퀴아오 마스크 "마스크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그럼! 근데 이 마스크가 누구 얼굴인 줄 알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과 굶주림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 생각하다가 생존을 위한 쇼핑에 나섰다. S&R 슈퍼마켓은 11시에 문을 연다고 했지만, 좀 더 한적하게 쇼핑을 하고 싶어 한 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놓아둔 의자에 앉아 쇼핑몰이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다가 아저씨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 쓰고 있는 마스크가 상당히 재밌다. 웃는 얼굴을 실사 프린트한 마스크인데, 아저씨 얼굴형이나 눈매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마치 아저씨 얼굴 그 자체 같다. 잠깐 망설이다가 아저씨 쪽으로 가서 - 하지만 1미터 거리를 유지한 채 - 사진을 좀 찍어도..
[필리핀 마닐라 생활] 루손섬 봉쇄 이틀째,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착한 움직임 "살라맛뽀(고맙습니다)! 비타민 드세요!"루손섬 봉쇄 이틀째,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을 봉쇄 중이라고는 하지만 약국이나 슈퍼, 시장 등은 문을 열었다.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은 안 되지만, 음식 배달은 된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천 원 남짓 배달료만 주면 집에서 편안하게 따뜻한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직업이라고는 해도 이런 시국에도 일하시는 분들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피자 배달을 받으면서 배달 아저씨에게 주스를 한 봉지 가져다드리고 나는 비타민을 배달왔다고 농담을 했더니 민망할 정도로 고마워하시면서 밝게 웃으셨다. 가난이 죄라고, 필리핀 사람들은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를 않는다. 약국은 항상 붐비지만, 처방전 약보다는 비타민을 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비타민 회사에서..
[필리핀 마닐라 생활] 코로나19를 대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자세 "계란 한 판 주세요!"필리핀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으로 달걀을 한 판이나 샀다. 마치 필리핀 사람처럼 수시로 장을 보기 때문에 계란을 열 개 이상 한꺼번에 산 적이 없지만, 또 언제 시장을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재래시장은 평소처럼 활기찼다. 채소가게에도 그리고 생선가게에도 물건이 가득하다. 아니,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아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시장 어디에도 바나나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대변인인 살바도르 파넬로가 바나나를 먹으면 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를 해서인지 아니면 갑자기 바나나가 세일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장 골목 어디에도 바나나는 없었다. 나는 바나나 사기는 포기하고, 파를 한 줌 가득 사고, 25페소짜리 사과를 6개 ..
[필리핀 마닐라 생활] 라면 사재기와 중국산 쌀 생필품을 사지 못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필리핀 정부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아도, 코로나19로 물건 구매가 어려워질 것 같지는 않다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마스크나 소독제 등과 같은 방역 관련 물건이라면 예외이겠지만, 돈만 있다면야 물건 구매가 어려워질 것은 없다. 쌀이든 라면이든 뭐라도 사서 먹으면 된다. 그래도 외출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하여 약간의 장을 봐두는 쪽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비상식량을 비축해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 쌀도 한 톨 없었으니, 쌀도 사고 오트밀도 사고 인터넷으로 장을 보았다. 그런데 배달하는 분은 오지 않고 대신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오더니, 쌀이 모두 품절이라고 알려왔다. 다른 쌀이라도 괜찮으니 배달해 달라고 했지만 그 뒤로 응답이 없다...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 국립 천문관(National Planetarium) 천체투영관의 내셔널 플라네타륨 쇼 1960년대 미국은 달 착륙 임무를 수행할만한 기술이 없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1969년 7월, 닐 올던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닐 암스트롱이 정말로 달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주로 날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생활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 정확한 시간을 잴 수 있게끔 전자시계 기술이 발달했으며, 우주인들의 식사를 위해 동결 건조 간편식 산업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그뿐인가. 우주 산업은 보온성이 좋은 옷과 충격 흡수가 잘 되는 운동화의 개발까지 이끌었다. 닐 암스트롱의 달착륙은 필리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반, 필리핀 천문학회에서 마닐라에 현대적인 천문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리잘파크'가 아직 '루네타 공원(Luneta Park)..
[필리핀 마닐라 비논도] 파리 감성의 사진 명소, 존스 브릿지(Jones Bridge)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 를 아주 재밌게 보았는데, 강동원이 출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 중 진회장(이병헌 분)이 마닐라로 해외 도피를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한국 영화 최초로 마닐라의 도심 지역을 통제하고 촬영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로 듣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내가 사랑하는 마닐라의 곳곳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고 하지만, 돈으로 상당히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필리핀이다. 치안 나쁘기로 유명한 톤도(Tondo) 지역에서 촬영한 것이야 돈을 무척이나 많이 써서 해결했겠구나 싶었지만, 존스 브릿지(Jones Bridge) 주변 길을 모두 통제하고 현지 경찰까지 백 명..
[필리핀 마닐라 인트라무로스] 산티아고 요새(포트 산티아고) 지하감옥(던전) 야간개장 운영시간 안내 몇 년 도에 발생한 일인지 연도만 외우라고 하지 않는다면 역사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옛 속담에 오이를 심으면 반드시 오이가 나온다고 했으니,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할까. 스페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세 리잘은 비폭력 저항 운동을 했고, 보니파시오는 무장 독립운동을 했다고 그냥 외워도 되지만, 이들의 유년기 삶의 기록을 살펴보면 왜 독립운동 방식이 그토록 달랐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역사 속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 보는 것은 퍼즐처럼 맞추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역사 이야기는 폴 고갱의 그림과 마찬가지이다. 직접 보지 않고, 사진이나 글로만 보면 재미가 덜하다. 그렇다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역사유적지에 가는 것도 좀 곤란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책으로 공부를 한 뒤 직접 그..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싸봉(닭싸움)과 아사도 벌써 9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2012년 당시 필리핀 관광부(DOT)에서는 이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관광객 유치 캠페인을 활발하게 펼쳤다. 대신 이란 슬로건을 사용해서는 아니겠지만, 그해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방문객 100만 명을 달성하고,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하여 마닐라공항을 백만 번째 방문한 여행객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필리핀 관광부 사이트를 들어가면 로고에 이라고 적힌 글씨를 볼 수 있는데,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시청 앞 보니파시오 분수 광장의 무료 분수쇼(Liwasang Bonifacio Dancing Fountain) 소매치기를 줄이려면 경찰보다 가로등을 늘려라?가로등이나 보안등과 같은 조명 시설이 늘어나면 강도나 소매치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야간에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하고 치안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을 환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도시의 치안을 좋게 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가로등만 촘촘하게 세운다고 갑자기 치안이 좋아지고 야간 범죄 문제가 모두 해결될 리가 없다. 도시의 조명이 어둠을 밝히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시민의 것으로 돌아가는 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이틀 앞둔 2월 12일, 마닐라 시(Manila City)에서 분수쇼라는 조금 색다른 행사를 했다. 작년 연말인가, 갑자기 마닐라시청 옆에 있는 보니파시오 기념비 앞 가득 울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