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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여행하기/메트로 마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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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생활] 자신감을 주는 대왕 바나나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나도 나이가 든다는 것을 아직 모를 때, 그래서 나이가 듦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만 인식할 때, 어느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나이가 들어서 아쉬운 것 중 하나는 호기심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것을 보는 기쁨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다행인지 혹은 불행인지, 점점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지만, 호기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착실히 나이를 먹어가는 이 와중에도 신기한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생긴다. 중국산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모두 수명이 짧은 것은 아닌가 보다. 코로나19 확진자는 매일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연일 ..
[필리핀 마닐라 생활] 지루한 월요일과 호두과자 필리핀, 그것도 대도시 마닐라에서 생활하다 보면 호두과자 따위는 까맣게 잊고 만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으로 호두과자를 즐겨 먹는 편도 아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매우 간단하다. 일단 그 맛이 내 취향이 아니다. 두서너 개는 아주 맛있게 먹지만, 네 개 정도에 가면 몸에 단팥 성분이 충분하게 느껴지고, 그 뒤로는 싫증을 내고야 만다.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간단하다. 나로서는 대체 어디에서 호두과자를 판매하는지 잘 모르겠다. 관심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마닐라에 호두과자 전문판매점이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본 바 없다. 호피아(Hopia)처럼 판매점이 곳곳에 눈에 띄면 한 번씩 사 먹을 수도 있겠지만, 파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10년 가까이 필리핀에 생활하면서 호두과자를 딱 두 번 먹어 봤다..
[필리핀 마닐라 생활] 20페소의 미친(mad) 페이스 쉴드로 부자가 되려면 "이제 곧 나도 부자가 될지 몰라!""어떻게?""페이스쉴드를 중국에 주문했어. 이달 말에 물건이 들어오면 잔뜩 팔아보려고 해." 서로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준지 4년인가 5년 만에 왕완딩 씨가 판매 품목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왕완딩 씨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리베르타드역 주변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가치담배나 신문, 탄산음료 그리고 핸드폰 로드 등을 파는데 그중에서도 잘 팔리는 것은 역시 담배이다. 하지만 담배는 이문이 많지 않으니, 소박한 좌판의 판매 품목에 페이스쉴드를 더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고 하여 사람들이 담배를 덜 피우거나, 콜라를 덜 마시는 것도 아니고, 왕완딩 씨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과 똑같은 수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플라..
[필리핀 마닐라 생활] 라자다 쇼핑몰에서 테이블을 샀는데 의자가 온다면 오전부터 햇살이 거리를 한가득 점령하고는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바람이 잘 부는 바닷가에 앉아 있어도 시원찮을 날에 태양이 작열하는 도로 위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간 까닭은 테이블 때문이었다. 라자다 쇼핑몰에서 접이식 테이블을 하나 주문했는데, 난데없이 의자가 배달이 온 것이다. 판매자가 물건을 잘못 보냈으면 의당 다시 택배 기사를 보내 수거를 해가야 할 터인데 싶지만, 필리핀에 그런 서비스 정신이 있을 리가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라자다에서는 구매자가 직접 LBC 사무실에 가서 택배로 환불 물건을 판매자에게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부피가 큰 데다 무겁기까지 한 의자를 가지고 LBC 사무실까지 걸어야 할 것을 생각해보면 '미안하기는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전혀 미안하게 들리지 않지만,..
[필리핀 마닐라] 서른아홉 개의 오이와 목욕탕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라고 해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최근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배달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삶이 참 퍽퍽했으리라는 것, 그리고 배달하는 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건 주문 시 단위 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소소한 이야기 하나.오이 다섯 개를 주문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채소 가게에서 오이 5kg을 보내왔다. 주문 내역서를 보니 5개라고 적은 것이 틀림없는데 보내온 영수증에는 5kg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봐서 물건을 챙겨 넣는 분이 잠깐 착각을 하신 듯했다. 나는 불량품을 받아도 환불하러 가기보다는 불량품의 장점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종류의 인간이라서 채소 가게 꾸야를 다시 부를 의지 따위는 전혀 없지만..
[필리핀 마닐라 생활] 도넛과 바꿔 먹는 닭고기 티놀라(Tinola) ▲ 팍시우(Paksiw) 후덥지근한 저녁이었지만, 내 체온은 36도였다. 체온계를 받아들고 가드 아저씨 체온을 재면서 체온계가 고장이 나지 않았음에 안심했다. 가드 아저씨들이야 위에서 시키는 것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34의 숫자가 찍히는 체온계를 내 이마에 가져다 대고 있는 것을 보면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형식적인 절차가 방역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쨌든, 지금은 정상적인 체온계를 손에 들었고, 모두 정상 체온이 나왔으니 오늘 저녁 아저씨들의 저녁 식사메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로 했다. 요즘 내 주요 관심사는 두 가지. 배달 음식과 가드 아저씨들의 저녁 식사 메뉴이다. 코로나19 덕분에 가드 아저씨들이 직접 밥을 해서 먹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제법 요리 ..
[필리핀 마닐라] 말라떼 다이아몬드 호텔에서 엔사이마다를 온라인 주문받는 세상 마닐라에 있는 고급호텔 대부분을 후줄근한 모습으로 자전거를 질질 끌고 돌아다녀 봐서 하는 이야기지만, 말라떼에 있는 다이아몬드 호텔(Diamond Hotel)만큼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호텔도 드물다. 레스토랑 직원들도 그렇지만, 주차장 가드 아저씨들은 정말 보기 드물게 친절하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가서 자전거를 어디 세우면 좋으냐고 물어봐도 당황하지 않고 매우 침착한 모습으로 안내해주는데, 자전거를 세우기 좋은 장소까지 직접 데려다주고 안전장치를 해두었는지 세심하게 물어봐 주기도 한다.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내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나와서 시원할 것이라는 귀한 정보까지 주는 것이 고마워서 음료수를 한 병씩 사다 주었더니, 세상 행복한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기도 한다. 퉁명..
[필리핀 마닐라] 파식 시장 비코 소토와 오토바이 트라이시클(Tricycle) 위기는 기회라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탁월한 정치 수완을 보여주는 기회로 만든 사람은 바로 파식(Pasig) 의 시장 비코 소토(Vico Sotto)이다. 필리핀의 유명 코미디언 빅 소토(Vic Sotto)와 배우 코니 레예스(Coney Reyes) 사이에서 태어난 비코 소토는 파식(파시그)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시장(mayor)에 출마하여 메트로 마닐라 지역 내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터라 비로 소토의 정치 성과에 대해 평가를 하기란 어렵지만, 비코 소토가 다른 어떤 시장보다 서민들 편에 서서 소통하는 정치를 보여주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파식(파시그)로 이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농담..
[필리핀 마닐라 생활] 루프물 영화의 거북이 형 어제와 비슷한, 아니, 지난주 또는 지난달과 비슷한 아침이었다. 요즘 나의 아침은 이불을 개키고, 형(거북이 이름)의 물을 갈아주면서 시작된다. 오후가 되면 너무나 더워서 형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곤혹스럽게 여겨지곤 했으니 손가락도 움직이기 귀찮은 마음이 들기 전에 청소며 빨래를 말끔히 해두어야만 했다. 코로나19와 더운 날씨가 합세하여 나를 매우 규칙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똑같으니 흡사 '사랑의 블랙홀'과 같은 루프물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지만, 재미없는 영화도 끝은 있는 법이라고 적당히 생각하기로 했다. 며칠 분량의 영화인지 확인은 어렵지만, 요즘 내가 찍고 있는 이 지루한 영화에도 엔딩 크레딧이 있을 터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불평분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투덜대기 쉬운 상황..
[필리핀 마닐라 생활] 코로나19 시대, 나만의 특별한 배달원 "토요일에는 시장에 가보고 에스파다(갈치)를 사다 줄게!"일전에 사 온 바나나는 너무 작아서 세 개씩 먹어야 했다고 알려주고 커다란 바나나를 사달라고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요즘과 같은 때에 시장에 큰 바나나가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완딩 씨가 내게 내민 것은 정말 커다란 바나나였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크고 싱싱한 바나나를 어디서 구했을까, 바나나 꾸러미를 내미는 왕완딩 씨의 얼굴에는 성공적으로 바나나를 사 온 안겨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비싸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기가 바나나값을 올린 것도 아니건만, 바나나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지만 왕완딩 씨가 시장의 과일 좌판을 모두 돌아보고 품질이며 가격을 꼼꼼하게 비교했음..
[필리핀 마닐라 생활] 커다란 소시지 대신 녀석이 고른 것 "케첩이 문 옆에 떨어졌어!""괜찮아요. 난 케첩 안 좋아해요!" 상당히 주관이 뚜렷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주관이 뚜렷한 녀석에게 타깃이 되면 도무지 헤어날 방법이 없다. 편의점에는 손님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녀석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동전을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해봤지만, 아침부터 굶어서 배가 고프다나 어쨌다나.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 벼르고 벼르다 편의점에 나온 것인데 이래서야 물건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나는 아이에게 지금 동전이 하나도 없으니 일단 저쪽으로 좀 가 있으라고 이야기한 뒤에야 맥주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럭저럭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면서 편의점 직원에게 소시지와 밥을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소시지는 꼬마 녀석에게 주면 된다고 했더..
[필리핀 마닐라 생활] 뚜레쥬르 빵집의 돌덩이 바게트 한때는 삼시 세끼 빵만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 입맛이란 바뀌기 마련이다. 소맷자락 가득 흰색 밀가루를 휘날리며 베이킹을 배웠을 정도로 빵을 퍽 좋아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빵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너무 많은 빵을 사서 그런 것인지 혹은 둘 다 원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장보기에 있어 빵집 방문이 생략된 지 오래다. 타루칸 마을에 갈 때마다 동네 빵집 진열대에 놓인 빵을 죄다 사는 것은 삶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만, 많이 사기만 할 뿐 내가 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으면서 마음이 좀 바뀌었다. 마우스를 들고 끄적끄적 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소일하는지라 먹는 것 외에는 딱히 즐거울..
[필리핀 마닐라 생활] 꽈리고추와 멸치 나는 이색 퓨전 요리도 잘 먹는 편이지만, 내가 요리할 때만큼은 절대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내 손가락을 거쳐서 그럴싸한 퓨전 음식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요리학원에서 배웠던 것을 벗어나 색다른 재료를 넣어볼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라면을 끓여도 포장지 조리예시에 적힌 것을 정확히 따르려고 노력하는 내게 꽈리고추 한 봉지는 꽤 버거운 존재였다. 제주상회의 배달하는 꾸야가 덤이라면서 건네준 비닐봉지에는 녹색의 꽈리고추가 가득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시장 가기가 어려워진 요즘과 같은 시기에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봉지를 펼치니 풀 냄새 비슷한 향긋한 냄새가 가득 느껴진다. 하지만 대체 이 쭈글쭈글한 풋고추를 어떻게 먹어야만 한단 말인가..
[필리핀 마닐라 생활] 뎅기열과 코로나19 반은 강제적으로 또 반은 자발적으로 자가 격리를 한 지 14일째. 메트로 마닐라에 봉쇄 조치가 내려지기 전부터 두문불출하였으니 실제적으로는 좀 더 오래되었겠지만, 언제부터 외출을 못 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계산해봤자 마음만 뒤숭숭해질 뿐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유머와 긍정성이라고 했으니, 힘든 시간이 절반은 지났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뎅기열에 걸려서 무척이나 고생한 적이 있다. 뎅기열은 모기를 매개로 하여 걸리는데, 이 병이 나면 고열과 함께 근육통이나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몸살감기 비슷한 증상을 보여서 초반에는 감기에 걸렸다는 착각을 하게 하지만, 온몸에 열이 나고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감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온몸에 통증을 심하게 느끼게..
[필리핀 마닐라 생활] PNB 은행과 투명비닐 칸막이 필리핀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쪽이 하나도 늘지 않는 것보다 안심이 된다. 정말 확진자가 없다면 필리핀 정부에서 루손섬 봉쇄라는 강경책을 썼을 리가 없는데, 확진자 수가 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필리핀 보건부에서 테스트 키트를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환자가 누군지 밝혀져야 치료를 하든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든 할 수 있다. 검사를 더 많이 하고, 더 많은 확진자 수를 기록하고, 빨리 이 무서운 바이러스를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리고 이 지루한 과정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최대한 바깥출입을 삼가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힘쓰는 것, 그 정도..
[필리핀 마닐라 생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더 빛나는 필리핀 사람들의 창의력 필리핀 사람들이 아이큐는 얼마나 될까? 아이큐 검사에서 높은 숫자를 기록한다고 하여 인생을 똑똑하게 산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아이큐 테스트가 큰 의미는 없다는 사람도 많지만, 모든 이가 아이큐 검사를 무의미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국가별 아이큐 순위(AAverage IQ by Country by Population)를 조사하는 사람도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World Population Review 사이트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아이큐는 105로 싱가폴(108)과 홍콩(108)에 이어 3위이다. 필리핀의 평균 아이큐는 86으로 85위 정도에 머문다. 이 사이트가 아니더라도 필리핀 사람들의 평균 아이큐는 대략 90 이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굳이 아이큐 검사 기관..
[필리핀 마닐라 생활] 건기의 시작과 매니 파퀴아오 마스크 "마스크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그럼! 근데 이 마스크가 누구 얼굴인 줄 알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과 굶주림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 생각하다가 생존을 위한 쇼핑에 나섰다. S&R 슈퍼마켓은 11시에 문을 연다고 했지만, 좀 더 한적하게 쇼핑을 하고 싶어 한 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놓아둔 의자에 앉아 쇼핑몰이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다가 아저씨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 아저씨, 쓰고 있는 마스크가 상당히 재밌다. 웃는 얼굴을 실사 프린트한 마스크인데, 아저씨 얼굴형이나 눈매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마치 아저씨 얼굴 그 자체 같다. 잠깐 망설이다가 아저씨 쪽으로 가서 - 하지만 1미터 거리를 유지한 채 - 사진을 좀 찍어도..
[필리핀 마닐라 생활] 루손섬 봉쇄 이틀째,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착한 움직임 "살라맛뽀(고맙습니다)! 비타민 드세요!"루손섬 봉쇄 이틀째,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을 봉쇄 중이라고는 하지만 약국이나 슈퍼, 시장 등은 문을 열었다.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은 안 되지만, 음식 배달은 된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천 원 남짓 배달료만 주면 집에서 편안하게 따뜻한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직업이라고는 해도 이런 시국에도 일하시는 분들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피자 배달을 받으면서 배달 아저씨에게 주스를 한 봉지 가져다드리고 나는 비타민을 배달왔다고 농담을 했더니 민망할 정도로 고마워하시면서 밝게 웃으셨다. 가난이 죄라고, 필리핀 사람들은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를 않는다. 약국은 항상 붐비지만, 처방전 약보다는 비타민을 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비타민 회사에서..
[필리핀 마닐라 생활] 코로나19를 대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자세 "계란 한 판 주세요!"필리핀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으로 달걀을 한 판이나 샀다. 마치 필리핀 사람처럼 수시로 장을 보기 때문에 계란을 열 개 이상 한꺼번에 산 적이 없지만, 또 언제 시장을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재래시장은 평소처럼 활기찼다. 채소가게에도 그리고 생선가게에도 물건이 가득하다. 아니, 평소보다 사람이 더 많아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시장 어디에도 바나나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대변인인 살바도르 파넬로가 바나나를 먹으면 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를 해서인지 아니면 갑자기 바나나가 세일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장 골목 어디에도 바나나는 없었다. 나는 바나나 사기는 포기하고, 파를 한 줌 가득 사고, 25페소짜리 사과를 6개 ..
[필리핀 마닐라 생활] 라면 사재기와 중국산 쌀 생필품을 사지 못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필리핀 정부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아도, 코로나19로 물건 구매가 어려워질 것 같지는 않다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마스크나 소독제 등과 같은 방역 관련 물건이라면 예외이겠지만, 돈만 있다면야 물건 구매가 어려워질 것은 없다. 쌀이든 라면이든 뭐라도 사서 먹으면 된다. 그래도 외출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하여 약간의 장을 봐두는 쪽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비상식량을 비축해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 쌀도 한 톨 없었으니, 쌀도 사고 오트밀도 사고 인터넷으로 장을 보았다. 그런데 배달하는 분은 오지 않고 대신 핸드폰 문자메시지가 오더니, 쌀이 모두 품절이라고 알려왔다. 다른 쌀이라도 괜찮으니 배달해 달라고 했지만 그 뒤로 응답이 없다...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 국립 천문관(National Planetarium) 천체투영관의 내셔널 플라네타륨 쇼 1960년대 미국은 달 착륙 임무를 수행할만한 기술이 없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1969년 7월, 닐 올던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닐 암스트롱이 정말로 달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주로 날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생활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 정확한 시간을 잴 수 있게끔 전자시계 기술이 발달했으며, 우주인들의 식사를 위해 동결 건조 간편식 산업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그뿐인가. 우주 산업은 보온성이 좋은 옷과 충격 흡수가 잘 되는 운동화의 개발까지 이끌었다. 닐 암스트롱의 달착륙은 필리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반, 필리핀 천문학회에서 마닐라에 현대적인 천문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리잘파크'가 아직 '루네타 공원(Luneta Park)..
[필리핀 마닐라 비논도] 파리 감성의 사진 명소, 존스 브릿지(Jones Bridge)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 를 아주 재밌게 보았는데, 강동원이 출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 중 진회장(이병헌 분)이 마닐라로 해외 도피를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한국 영화 최초로 마닐라의 도심 지역을 통제하고 촬영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로 듣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내가 사랑하는 마닐라의 곳곳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고 하지만, 돈으로 상당히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필리핀이다. 치안 나쁘기로 유명한 톤도(Tondo) 지역에서 촬영한 것이야 돈을 무척이나 많이 써서 해결했겠구나 싶었지만, 존스 브릿지(Jones Bridge) 주변 길을 모두 통제하고 현지 경찰까지 백 명..
[필리핀 마닐라 인트라무로스] 산티아고 요새(포트 산티아고) 지하감옥(던전) 야간개장 운영시간 안내 몇 년 도에 발생한 일인지 연도만 외우라고 하지 않는다면 역사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옛 속담에 오이를 심으면 반드시 오이가 나온다고 했으니,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할까. 스페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세 리잘은 비폭력 저항 운동을 했고, 보니파시오는 무장 독립운동을 했다고 그냥 외워도 되지만, 이들의 유년기 삶의 기록을 살펴보면 왜 독립운동 방식이 그토록 달랐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역사 속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 보는 것은 퍼즐처럼 맞추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역사 이야기는 폴 고갱의 그림과 마찬가지이다. 직접 보지 않고, 사진이나 글로만 보면 재미가 덜하다. 그렇다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역사유적지에 가는 것도 좀 곤란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책으로 공부를 한 뒤 직접 그..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싸봉(닭싸움)과 아사도 벌써 9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2012년 당시 필리핀 관광부(DOT)에서는 이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관광객 유치 캠페인을 활발하게 펼쳤다. 대신 이란 슬로건을 사용해서는 아니겠지만, 그해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방문객 100만 명을 달성하고,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하여 마닐라공항을 백만 번째 방문한 여행객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필리핀 관광부 사이트를 들어가면 로고에 이라고 적힌 글씨를 볼 수 있는데,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시청 앞 보니파시오 분수 광장의 무료 분수쇼(Liwasang Bonifacio Dancing Fountain) 소매치기를 줄이려면 경찰보다 가로등을 늘려라?가로등이나 보안등과 같은 조명 시설이 늘어나면 강도나 소매치기가 줄어든다고 한다. 야간에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하고 치안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을 환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도시의 치안을 좋게 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가로등만 촘촘하게 세운다고 갑자기 치안이 좋아지고 야간 범죄 문제가 모두 해결될 리가 없다. 도시의 조명이 어둠을 밝히는 것 이상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시민의 것으로 돌아가는 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밸런타인데이를 이틀 앞둔 2월 12일, 마닐라 시(Manila City)에서 분수쇼라는 조금 색다른 행사를 했다. 작년 연말인가, 갑자기 마닐라시청 옆에 있는 보니파시오 기념비 앞 가득 울타..
[필리핀 마닐라] 밸런타인데이와 자전거 산책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내게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좀 있다. 하지만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는 그 간격이 너무 멀다. 욕심을 낸다고 해서 잘 되는 일이 아님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욕심만 앞선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누가 봐도 감탄할 만큼 멋진 글을 쓰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촐한 잡문에 불과할 것을 쓸 뿐이건만, 재주가 없는 탓에 간단한 글쓰기도 힘들어한다. 가끔은 적절한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서 온종일 고민에 빠질 때도 있다. 머리가 극도로 뒤숭숭해지면 간혹 무얼 쓰고 있었는지조차 잊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 오면 해결 방법이 없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모든 노래가 소음처럼 들리고, 가벼운 단어의 배열조차 쉽지 않았던 며칠간 가지고 ..
[필리핀 마닐라] 여행가방 보관과 와이파이 사용이 공짜! 모아 투어리스트 라운지(MOA Tourist Lounge) 오픈 "몰 오브 아시아에서 잠깐 식사를 하려는데 여행 가방을 맡길 곳이 있을까요?"마닐라공항으로 가기 전에 SM 몰 오브 아시아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면 매우 좋은 소식이 있다. 지난주 목요일, 마닐라 파사이의 몰 오브 아시아 쇼핑몰에서 '모아 투어리스트 라운지(MOA Tourist Lounge)'라는 이름으로 여행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오픈했다. 외국인 여행객만을 위한 시설이라 그런지 기대 그 이상으로 시설이 깔끔하다. 게다가 시설 이용이 모두 무료이다. 대신 라운지 시설 이용을 위해서는 여권 확인이 필수이다.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외국인 등록증(ACR I-CARD)과 같은 신분증을 제시해도 된다. 이곳 모아 투어리스트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크게 4가지. 가장 구미가 당기는 것은 여행 가..
[필리핀 마닐라] 2페소를 60페소로 만드는 친절함 필리핀 특유의 날씨 때문인지 물건 수명이 한국과 다르다. 플라스틱 보관함이야 수명이 다해서 부서진다고 하지만, 윤하 님이 사다 주신 고급 손톱깎이마저 나사 부분에 녹이 슬었으니 어이가 없다. 물건을 살 때 정품 구매를 선호하는데 그래도 마찬가지이니 품질 나쁜 물건을 구매해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고프로 자전거 거치대만 해도 그렇다. 중국산이 사기 싫어 한국까지 가서 사 온 비싼 정품이건만 햇살 때문인지 스펀지 부분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스펀지 덕분에 거치대가 자전거 손잡이 부분과 밀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게으른 나는 몇 달이 지나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드웨어 샵에서 스펀지를 사다가 붙여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생각만 하고 실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