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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구석구석/피나투보 타루칸마을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멈춤을 아는 만족이란 무엇인가? 내가 타루칸 마을 사람들을 좋아하는 까닭에 대해 굳이 적어보자면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웃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족을 배신할 만큼의 돈이나 돈을 버릴 만큼의 가족이 없는 데다가 절세 미인도 아니고 무엇인가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단한 일로 기뻐하려면 기뻐할 일이 너무 띄엄띄엄할 인생을 사는 터라 사소한 일에도 즐거워하도록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타루칸 마을에 머물 때만큼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배울 것도 많다. 타루칸 마을 사람들이 식빵 80개를 세는 일에도 한참 걸리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식빵 80개를 나눌 때는 10개씩 8줄로 만들어 세면 편하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는 해도, 어..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바나나 수확과 알비노 카라바오 소 피나투보 화산 주변의 넓은 평야를 꽉 채운 것은 아침의 냄새였다. 아침 특유의 상쾌함에 시원한 바람의 냄새, 비를 촉촉하게 담은 풀의 냄새, 들판에 놓아 기르는 카바라오 소들이 움직이는 냄새가 가득 엉켜 있었다. 어두운 밤을 보내고 막 잠에서 깬 바람결은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나는 매사에 싫증을 매우 잘 느끼는 편이지만, 타루칸 마을에 가는 일만큼은 좀처럼 질려 하는 법이 없었다. 타루칸 마을에 매달 드나든 지도 2년이 훌쩍 넘어 있었지만, 마을로 가는 일은 언제나 설레어서 한 달 정도가 되면 마을에 가야지 하는 마음에 심장이 간질대곤 했다. 마을에 가져다줄 장을 보고, 새벽녘에 일어나 덜컹대는 4X4를 타고 마을까지 가는 일이 고단하기는 하여도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지면 그깟 고단함 정도야..
[필리핀 딸락] 뉴클락시티(New Clark City)의 개발과 동남 아시아 경기 대회 "요즘 일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졌어! 다들 경기장 짓는 곳에 일하러 가버렸다니까!"피나투보 화산에 사는 타루칸 마을 꼬마 녀석들을 보려고 3년째 매달 딸락(Tarlac)에 가고 있지만, 요즘처럼 카파스(Capas) 지역이 활기차 보이는 일은 처음이다. 무언가 자꾸 건물이 들어서는 것 같더니 산타 루시아 바랑가이 근처로는 도로 공사까지 하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공사 규모가 대단히 큰 것이 동네 사람들을 위한 작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슨 도로를 만드는 것이냐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알빈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뉴클락시티(New Clark City)로 가는 도로라고 알려준다. 연말이면 지금 공사하는 도로를 통해 동남아시아 게임을 위한 스포츠 경기장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그러니까 2019년 ..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햇살을 사랑하는 초록 바나나 이 나이에 깨닫기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늘 좀 느리게 깨닫는 편이라서 늦게라도 깨달으면 되었다, 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요즘 나는 자연의 신비란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방 안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검은색만 슬금슬금 쌓이던 바나나였다. 타루칸 마을에서 받았을 때만 해도 진한 자연의 색으로 새벽녘의 차가움을 그대로 품고 있었는데, 바나나는 나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선명하고 어여쁜 초록색을 잃고 점점 시커멓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색깔이 미워진 바나나는 맛도 참 없었다. 아니, 맛이 없었다기보다는 먹지 못할 음식에 가까웠다. 익지 않은 야생의 바나나는 덜 익은 땡감보다도 떫었다. 어찌나 떫은맛인지 입안에 든 것을 황급히 뱉어내었을 정도이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못할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