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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구석구석/메트로 마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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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생활] 도넛과 바꿔 먹는 닭고기 티놀라(Tinola) ▲ 팍시우(Paksiw) 후덥지근한 저녁이었지만, 내 체온은 36도였다. 체온계를 받아들고 가드 아저씨 체온을 재면서 체온계가 고장이 나지 않았음에 안심했다. 가드 아저씨들이야 위에서 시키는 것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34의 숫자가 찍히는 체온계를 내 이마에 가져다 대고 있는 것을 보면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형식적인 절차가 방역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쨌든, 지금은 정상적인 체온계를 손에 들었고, 모두 정상 체온이 나왔으니 오늘 저녁 아저씨들의 저녁 식사메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로 했다. 요즘 내 주요 관심사는 두 가지. 배달 음식과 가드 아저씨들의 저녁 식사 메뉴이다. 코로나19 덕분에 가드 아저씨들이 직접 밥을 해서 먹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제법 요리 ..
[필리핀 마닐라] 메트로 마닐라의 주류 판매 허용 지역과 금지 지역(금주령) 꼭 필요한 외출 외에는 하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신신당부를 해놓고 정작 본인은 가족이 있는 다바오로 가버린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필리핀 루손섬에 ECQ라는 이름으로 강화된 지역사회 격리조치를 내렸을 때, 그러니까 지난 3월 중순의 일이지만 모든 규칙은 엄격하게 보였다. ECQ에 대한 상세 지침이 내려졌는데, 어찌나 까다로운지 규칙에 따라 외출하기보다는 집에 있기를 선택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ECQ 상세 지침을 보면 주류 판매에 대한 내용이 없다. 주류 판매 허용할지에 대한 결정은 지방자치단체(LGUs)에 달려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시(City)에서 하나둘씩 지역 내 주류 판매 금지령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음주와 코로나19 감염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하지만..
[필리핀 마닐라] 말라떼 다이아몬드 호텔에서 엔사이마다를 온라인 주문받는 세상 마닐라에 있는 고급호텔 대부분을 후줄근한 모습으로 자전거를 질질 끌고 돌아다녀 봐서 하는 이야기지만, 말라떼에 있는 다이아몬드 호텔(Diamond Hotel)만큼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호텔도 드물다. 레스토랑 직원들도 그렇지만, 주차장 가드 아저씨들은 정말 보기 드물게 친절하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가서 자전거를 어디 세우면 좋으냐고 물어봐도 당황하지 않고 매우 침착한 모습으로 안내해주는데, 자전거를 세우기 좋은 장소까지 직접 데려다주고 안전장치를 해두었는지 세심하게 물어봐 주기도 한다.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내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에어컨이 나와서 시원할 것이라는 귀한 정보까지 주는 것이 고마워서 음료수를 한 병씩 사다 주었더니, 세상 행복한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기도 한다. 퉁명..
[필리핀 마닐라] 파식 시장 비코 소토와 오토바이 트라이시클(Tricycle) 위기는 기회라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탁월한 정치 수완을 보여주는 기회로 만든 사람은 바로 파식(Pasig) 의 시장 비코 소토(Vico Sotto)이다. 필리핀의 유명 코미디언 빅 소토(Vic Sotto)와 배우 코니 레예스(Coney Reyes) 사이에서 태어난 비코 소토는 파식(파시그)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시장(mayor)에 출마하여 메트로 마닐라 지역 내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터라 비로 소토의 정치 성과에 대해 평가를 하기란 어렵지만, 비코 소토가 다른 어떤 시장보다 서민들 편에 서서 소통하는 정치를 보여주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파식(파시그)로 이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농담..
[필리핀 마닐라 생활] 루프물 영화의 거북이 형 어제와 비슷한, 아니, 지난주 또는 지난달과 비슷한 아침이었다. 요즘 나의 아침은 이불을 개키고, 형(거북이 이름)의 물을 갈아주면서 시작된다. 오후가 되면 너무나 더워서 형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곤혹스럽게 여겨지곤 했으니 손가락도 움직이기 귀찮은 마음이 들기 전에 청소며 빨래를 말끔히 해두어야만 했다. 코로나19와 더운 날씨가 합세하여 나를 매우 규칙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똑같으니 흡사 '사랑의 블랙홀'과 같은 루프물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지만, 재미없는 영화도 끝은 있는 법이라고 적당히 생각하기로 했다. 며칠 분량의 영화인지 확인은 어렵지만, 요즘 내가 찍고 있는 이 지루한 영화에도 엔딩 크레딧이 있을 터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불평분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투덜대기 쉬운 상황..
[필리핀 마닐라 생활] 코로나19 시대, 나만의 특별한 배달원 "토요일에는 시장에 가보고 에스파다(갈치)를 사다 줄게!"일전에 사 온 바나나는 너무 작아서 세 개씩 먹어야 했다고 알려주고 커다란 바나나를 사달라고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요즘과 같은 때에 시장에 큰 바나나가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완딩 씨가 내게 내민 것은 정말 커다란 바나나였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크고 싱싱한 바나나를 어디서 구했을까, 바나나 꾸러미를 내미는 왕완딩 씨의 얼굴에는 성공적으로 바나나를 사 온 안겨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비싸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기가 바나나값을 올린 것도 아니건만, 바나나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지만 왕완딩 씨가 시장의 과일 좌판을 모두 돌아보고 품질이며 가격을 꼼꼼하게 비교했음..
[필리핀 마닐라 생활] 커다란 소시지 대신 녀석이 고른 것 "케첩이 문 옆에 떨어졌어!""괜찮아요. 난 케첩 안 좋아해요!" 상당히 주관이 뚜렷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주관이 뚜렷한 녀석에게 타깃이 되면 도무지 헤어날 방법이 없다. 편의점에는 손님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녀석은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동전을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해봤지만, 아침부터 굶어서 배가 고프다나 어쨌다나.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 벼르고 벼르다 편의점에 나온 것인데 이래서야 물건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나는 아이에게 지금 동전이 하나도 없으니 일단 저쪽으로 좀 가 있으라고 이야기한 뒤에야 맥주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럭저럭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면서 편의점 직원에게 소시지와 밥을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소시지는 꼬마 녀석에게 주면 된다고 했더..
[필리핀 마닐라 생활] 뚜레쥬르 빵집의 돌덩이 바게트 한때는 삼시 세끼 빵만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 입맛이란 바뀌기 마련이다. 소맷자락 가득 흰색 밀가루를 휘날리며 베이킹을 배웠을 정도로 빵을 퍽 좋아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빵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너무 많은 빵을 사서 그런 것인지 혹은 둘 다 원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장보기에 있어 빵집 방문이 생략된 지 오래다. 타루칸 마을에 갈 때마다 동네 빵집 진열대에 놓인 빵을 죄다 사는 것은 삶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이지만, 많이 사기만 할 뿐 내가 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으면서 마음이 좀 바뀌었다. 마우스를 들고 끄적끄적 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소일하는지라 먹는 것 외에는 딱히 즐거울..